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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파멸 The Ruination of Men
2001-11-02

부산국제영화제 거장의 손길

월드시네마|멕시코|아르투로 립스테인|2000년|106분|흑백

매복이라는 비장한 행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흙먼지 길. 추레한 두 남자가 몸을 숨기더니 손수레를 끄는 한 사내를 덮쳐 때려죽인다.

대관절 왜? 느닷없는 살인으로 허두를 뗀 감독은 <저수지의 개>의 수다를 방불케 하는 범인들의 실없는 대화와 죽은 남자의 시체를 놓고 두 아내가 벌이는 이악스런 줄다리기, 그리고 범인을 간파한 조강지처의 기묘한 복수로 카메라를 옮겨간다. 그리고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두 아내 사이에 도중(途中)의 집을 짓고 야구연습에 몰두했던 죽은 남자의 일상을 보여준다.

루이스 브뉘엘의 ‘도제’로 성장해 멕시코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 된 아르투로 립스테인이 “나의 첫 코미디”라고 공언한 이 영화를 보면, 극중 인용된 노래처럼 “여자들 탓”인지는 불분명해도 망가진 것이 남자들의 삶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똑같은 빈곤과 불행 속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여자들의 다부진 면모는 그와 대조를 이룬다. 소의 눈처럼 느리게 꿈적이는 암전으로, 기다란 시퀀스들을 이어가는 영화적 리듬과 블랙 유머가 <천국보다 낯선>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