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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여고괴담>의 복도신을 3D로 본다면? 진짜 간 떨어지겠네~!”
강병진 2008-02-26

한국 입체영화 제작의 새로운 움직임과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위한 과제

<여고괴담>의 한 장면부터 복기하자. 복도 끝의 소녀가 점프 컷으로 관객에게 육박하던 그 장면. 비록 리메이크영화지만 <링>에서 TV를 뚫고 나와 무시무시한 긴 머리의 공포를 보여주던 장면도 있다. 만약 이 장면을 3D입체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여고생 귀신과 사다코가 당신의 눈앞까지 다가올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은 가공할 공포감의 위력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에서 그런 입체영화가 가능하냐고 할 것이다. 입체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나,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만 만드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한국에서는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런데 한국에서도 입체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극장용 영화로.

지난 2월18일, 새벽 2시의 CGV구로. 스무명 남짓한 무리의 사람들이 관객이 빠져나간 극장으로 들어섰다. <친절한 금자씨>를 제작한 이춘영 프로듀서와 후반작업업체인 HFR의 옥임식 실장을 비롯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김병일 촬영감독 등은 이날 이곳에서 자신들이 국내 최초로 제작한 디지털 입체영화 <외다리 오스카>를 시연했다. 약 8분짜리 영상인 이 작품은 부산의 비보이그룹 이지락의 공연을 담은 영화다. 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극장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입체안경을 쓰자 제작에 참여한 영산대학교의 로고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이어 제목인 <외다리 오스카>란 글자가 입체 형태로 등장했고, 이후 비보이들이 들어선 무대의 공간이 기존 3D영화에서 보던 깊이와 공간감 그대로 재현됐다. 스크린의 가운데에서 춤추는 비보이의 모습이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화면의 왼쪽에 위치한 배우들의 모습이 다소 흐릿하긴 했으나 한국에서도 입체영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지난 1년간 이 프로젝트를 꾸려왔던 이춘영 프로듀서는 “여기에는 SD급의 카메라가 사용됐고, 영사과정에서 다소 핀트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기존 영화용 카메라로 촬영하고 몇 가지 데이터만 정리된다면 누가 봐도 손색없는 한국산 입체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8년 <몽녀>로부터 시작된 역사

사실 한국 입체영화의 역사는 꽤 긴 편이다. 현재 HFR이 복원 중인 임권택 감독의 1968년작 <몽녀>도 그 당시 필름카메라로 촬영된 입체영화였다. HFR의 옥임식 실장은 “과거 8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도 입체영화의 붐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든 입체영화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시 입체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07년 초부터 입체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춘영 프로듀서도 “알고 봤더니 국내에도 4, 5개의 업체가 10년 전부터 입체영화를 연구해왔었다”고 말했다. “다들 놀이공원이나 노래방 영상, 입체TV, 휴대폰용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들이다. 하지만 옛날부터 연구해온 덕분에 자신이 가진 입체영화에 대한 마인드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다만 우리나라 여건상 극장용 입체영화에는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다리 오스카>의 한 장면

<외다리 오스카>의 한 장면

그렇다면 지금은 도전해볼 만한 시점일까. <외다리 오스카>를 만든 이들은 극장과 제작자 모두 국산 입체영화의 도래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각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설립한 입체영화관이 전국에 약 30, 40개가 있으며 몇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입체상영을 통해 그에 따른 관객의 수요도 확인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입체영화가 개발된다고 해도 과연 시장성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단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입체영화의 장점을 얻을 수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급의 예산이 투입된 대작들이다. 또한 아무리 관객이 많이 몰린다고 해도 국내에 있는 입체영화관 시설이 아직은 그 정도 예산을 가진 영화들의 수익을 보장해줄 만큼 많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외다리 오스카>를 만든 이들은 “그런 선입견에서 비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공포나 무술액션영화, 심지어 에로영화에도 강점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옥임식 실장은 “입체영화에 대한 우려는 입체영화를 만드는 기술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실버스크린과 디지털 영사기에서 입체효과를 줄 수 있는 편광필터, 그리고 입체영화용 안경”만 있다면 입체영화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반작업업체는 OK, 모험적 시도 필요

물론 극장과 제작자, 그리고 후반작업업체까지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극장에서는 입체영화 콘텐츠를 먼저 공급해달라고 하고, 제작자쪽에서는 입체영화를 만들어도 아직 상영할 공간이 적다고 말한다. 또한 입체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와 촬영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며 후반작업업체는 입체영화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옥임식 실장은 “후반작업업체 입장에서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입체영화를 색보정하는 기술은 마련되어 있다. 다만 입체영화는 일반영화에 비해 촬영소스가 2배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후반작업비용을 알맞게 책정하면 되는 것이다. 제작파트와 극장쪽에서만 준비가 된다면 후반작업쪽은 바로 나설 수 있다.” 그는 촬영여건또한 “아무래도 카메라 2대를 놓고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려운 점이 많지만 고화질의 HD카메라들이 부피를 줄여가면서 가격도 저렴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점점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것 외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도 아직 남아 있는 숙제다. 입체영화가 한국에서 일반화되지는 못하더라도 확실한 가능성과 시장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확실한 콘텐츠가 나와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타감독들이 새로운 도전을 해주면 좋겠다”는 이춘영 프로듀서는 “몇몇 감독들에게 참여를 부탁한 적이 있지만, 아직은 그들을 설득할 만큼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작품이 없어서 주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산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존 제작비에서 크게 증가하는 액수는 필요없다. 미국의 IN3이라는 회사에서는 기존의 2D영화를 3D로 변환해주는 데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받는다고 하지만, 사실 입체영화는 카메라만 2대를 놓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정리하고 후반작업이 받쳐주면 만들 수 있다.” 현재 <외다리 오스카>를 연출한 김병일 감독은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영산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10편 묶음의 입체단편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일반단편영화는 상업영화관에서 상영되기 힘들지만 입체단편영화라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현재 2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인데, 나중에 상영된다면 충분히 국산 입체영화도 가능하다는 점이 증명될 것이다.” 필름에서 끊어진 한국의 입체영화는 디지털 시대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남아 있지만, 방향은 확실해 보인다.

입체영화의 원리,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론은 단순하다. 하나뿐인 카메라의 시야를 사람의 눈처럼 두개로 만들어주고 각각의 카메라가 촬영한 필름들을 합쳐서 하나로 봉합하면 된다. 입체영화를 보면서 잠깐 안경을 벗으면 스크린의 영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카메라의 시야를 두개로 만드느냐는 것. 하지만 사실 이것도 매우 단순하다. 2대의 카메라를 일정한 간격을 맞춰 설치해서 찍으면 그만이다. 간격만 구현할 수 있다면 화질이 어떻든 간에 HD카메라부터 가정용 디지털캠코더까지 입체영화를 촬영할수 없는 카메라는 없다. <외다리 오스카>를 제작한 팀이 사용한 카메라는 P2라는 기종이다. 제작진은 HD보다 아래인 SD급의 이 카메라 2대를 마운트(카메라를 고정시키는 틀)에 끼워서 촬영했다. 하지만 사람의 양쪽 눈이 가진 65mm의 간격을 맞추는 건 단순하지 않은 일이다. 카메라 보디와 렌즈의 기본 부피와 크기가 있는 이상 65mm란 간격은 쉽게 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입체영화들은 카메라 한대는 그냥 놓고 나머지 한대는 렌즈를 아래로 향하게 해서 바싹 붙여놓는다. 단 렌즈 아래에 거울을 붙여놓은 뒤 그 나머지 한대의 카메라가 거울에 반영된 상을 찍도록 하는 것이다. 간격 외에 두 카메라의 성능 및 데이터를 똑같이 설정하는 것도 관건이다. 같은 회사가 만든 같은 기종의 카메라일지라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 HFR의 옥임식 실장은 “입체영화는 사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마음먹고 시도한다면 일반 학생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개의 영상파일을 하나로 합치는 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파이널 컷이나 프리미어 같은 편집프로그램에서도 가능하다고. 그리고 나서 입체영상용 컴퓨터 모니터와 입체영상용 VGA카드를 구입해서 설치하고 재생한 뒤, 가까운 입체상영관에서 몰래 가져온 안경을 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 안경의 가격은 200원 정도라고 하니 범법을 하고 싶지 않다면 직접 구입해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