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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 Hush!
2001-11-02

아시아영화의 힘

아시아영화의 창|일본|하시구치 료스케|2001년|135분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남과 여,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로만 구성되어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혼자 살아가던 후지쿠라 아사코는 어느날 우동집에서 다정한 게이 커플 가쓰히로와 나오야를 만난다. 마침 비가 내리고 가쓰히로는 아사코에게 우산을 빌려준다. 며칠 뒤 가쓰히로를 찾아온 아사코는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섹스는 하지 않고, 인공수정으로 ‘아버지의 눈을 가진’ 가쓰히로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던 가쓰히로는 아사코의 열의에 조금씩 마음이 동한다. 강력하게 반발하던 나오야의 마음도 돌아선다. 아이를 낳는 것에 동의한 게이 커플과 독신녀는 기묘한 공동체를 이루는 꿈에 설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동생 가쓰히로의 집을 찾아온 형 가쓰지 가족과 나오야의 어머니가 우연히 맞닥뜨리면서 복잡해진다. 가쓰히로와 나오야가 결혼하지 않고 게이 커플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게다가 이상한 여자와 아이를 갖겠다니. 이미 뒷조사를 끝낸 나오야의 어머니가 아사코를 몰아붙이고, 가쓰히로의 형수가 강력하게 반대를 한다. 아사코의 대답은 간단하다. 가쓰히로와 나오야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아 저런 행복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자신도 그런 느낌을 갖고 싶었다고. 그들과 함께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룬다면 나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내가 원한 것은 ‘다른’ 가족이었다고.

<허쉬>는 동성애자 커플이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에서 나아가, 보편적인 행복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라든가 세상에서 흔히 생각하는 이성간의 사랑으로 지어진 가족이 아니라 우정과 동성애, 그리고 친밀함으로 다져진 가족이란 과연 가능할 수 있는가. <허쉬>는 찬찬한 발걸음으로, 특이한 가족의 다소 씁쓸하면서도 화사한 형성과정을 담아낸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마지막 세 남녀가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은 어떤 행복한 가정도 부럽지 않게 비친다. 소수자의 삶을 그린 퀴어영화의 틀을 뛰어넘은, 세대를 막론하고 보아야 할 가족영화로 정의내려야 할 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