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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기 연민,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

4월17일부터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리는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

가와세 나오미 감독

잘 알려진 이야기. 가와세 나오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뒤, 어머니 또한 집을 나갔다. 어린 소녀는 외할머니에게 입양되어 나라현에서 외로운 십대 시절을 통과한다. 결핍과 고독, 그리움에 사무친 그녀는 스물세살 되던 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부모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 서툰 다큐멘터리 <따뜻한 포옹>을 야마가타영화제에 출품한다. 그때 오가사 신스케의 촬영감독이었던 다무라 마사키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소녀의 절실함에 기꺼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좋은 부모를 갖지 못한 대신 좋은 어른을 곁에 두었다. 다무라 마사키는 가와세에게 스탭을 소개하고 직접 촬영을 해가며 그녀와 함께 그녀의 35mm 장편 데뷔작인 <수자쿠>를 탄생시켰다. 1997년 칸영화제는 <수자쿠>에 황금카메라상을 주었다.

가와세 나오미의 지지자임을 자처한 정성일 평론가는 그녀를 묘사할 때, ‘공주병’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할 관심으로부터 일찍이 거절당한 소녀가 세상을 대할 수 있는 방식의 수는 많지 않다. 세상을 증오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거나 그런 세상 앞에서 단단한 공주 옷을 입고 자신을 지키거나. 후자의 길을 선택한 가와세 나오미에게 카메라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 자신을 연민하는 법부터 배웠는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그녀의 영화들을 보며 공주의 수사가 상실감과 쓸쓸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며, 더이상의 상처를 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인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영화에서 이 텅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아름답고 때로는 초현실적인 자연의 순간들이며 묵묵히 끝까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관계들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때때로 가와세 나오미의 끝도 없는 자기 연민의 감수성은 보는 이의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세상과 섣부르게 화해하고 타협하는 대신 자기에 대한 연민을 무기로 자신의 상처와 끝까지 싸우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따뜻한 포옹>에서 <너를 보내는 숲>까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원망하고 슬퍼하고 다짐하고 시작하는 그녀는 아주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그녀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만 준다면, 그녀의 소녀적인 자기 연민은 충분히 견뎌볼 만한 가치가 있다. 4월17일부터 27일까지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리는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에서는 그녀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열편이 소개되니, 그녀의 변화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달팽이: 나의 할머니> 어린 시절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 또한 새 출발을 위해 집을 나가면서 가와세 나오미에게는 외할머니가 엄마이자 할머니이자 친구였다. 소녀는 스물네살 되던 해, 8mm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찍는다. 카메라를 든 소녀는 밭을 일구는 할머니에게 어릴 때의 기억을 묻기도 하고 할머니의 하소연을 듣기도 하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가까이서 관찰하기도 한다. 때때로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자신의 얼굴을 담기도 한다. 할머니와의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가도 그녀는 창문에 손을 뻗어 손가락 사이로 새어드는 빛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거기서 그녀의 미소짓던 얼굴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슬픔이 새어나온다. 또 카메라가 하늘을 비추며 ‘하늘’이라고 부르고 태양을 비추며 ‘태양’이라고 부르고 거미를 비추며 ‘거미’라고 부르고 할머니를 비추며 ‘할머니’라고, 자신을 비추며 ‘나오미’라고 부를 때, 이 장면들의 연속은 그녀의 외로운 세계다. 오직 할머니와 자신, 그리고 자연으로만 채워진 세계. 그래서 <달팽이: 나의 할머니>는 삶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에 대한 애정의 기록이자 자신의 세계에 대한 연민의 기록이다. 1995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수자쿠> 이것은 가와세 나오미 자신의 이야기다. 혹은 그녀가 자신도 그곳에 속하길 절실하게 꿈꾸는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나라현 남쪽의 어느 산골 마을. 코조와 그의 어머니, 아내, 딸 미치루, 조카 에이스케가 살고 있다. 영화는 어린 에이스케와 미치루가 마치 친남매처럼 손을 꼭 붙들고 할머니, 엄마, 아빠를 따라 산골을 누비는 평화로운 가족의 그림으로 도입부를 진행한다. 에이스케의 부모는 소년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나버렸는데, 소년은 미치루의 엄마인 젊은 외숙모의 뒷모습을 어떤 그리움을 담아 쳐다보곤 한다. 그리고 영화는 15년 뒤로 건너뛴다. 에이스케에게 외숙모는 여전히 묘한 연정의 혹은 애틋한 대상이고 소녀가 된 미치루는 에이스케를 사랑한다. 집안 사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어느 날 갑자기 코조는 말없이 집을 나간다. 평화로웠던 대가족이 운명처럼 흩어지게 되는 과정을 담은 후반부는 인물들이 한발 늦게 서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과 고요하지만 깊고 신비로운 숲의 풍경들, 그리고 8mm 카메라로 찍어서 중간 중간에 삽입된 실제 마을 사람들의 얼굴로 채워진다. 영화는 마음의 엇갈림과 이별의 순간에 당면한 인물들의 심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드러내는 대신 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인물들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다. 장면의 배치는 신중하고 섬세하며, 가장 극적인 순간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그 절제미 때문에 서글프다. 이를테면 코조가 떠나던 날의 푸른 숲, 에이스케와 외숙모 각자의 억눌린 마음을 대변하듯 하염없이 내리던 비, 에이스케와 미치루의 지붕 위에서의 마지막 추억, 그리고 모두 떠나고 에이스케와 할머니만 남은 텅 빈 집의 쓸쓸한 정서는 마술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이 영화로 가와세 나오미는 27살에 최연소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사라소주>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집 주변을 따라간다. 두 소년, 케이와 슌이 장난을 치다가 집 밖 어딘가로 한참을 뛰어가는 동안, 여전히 카메라는 그들의 뒤를 쫓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케이가 사라진다. 당황한 슌의 얼굴. 그리고 몇년을 건너뛰어 영화는 고등학생이 된 슌과 그의 첫사랑 유, 마을의 바사라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슌의 아버지, 그리고 임신 중인 슌의 어머니(가와세 나오미가 연기했다)의 단조로운 일상으로 들어온다. 케이를 잊지 못하는 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케이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고, 유 또한 자신이 엄마라고 불러왔던 여자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진실을 듣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충격과 슬픔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대신 이제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면해야만 한다고 중얼거리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사라 축제 당일,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힘차게 춤을 추는 이들의 몸짓과 표정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본다. 이 장면은 마치 그동안의 상실감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분출하며 아픔을 씻어내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장면 자체만으로도 오묘하게 아름답다. 얼마 뒤 슌의 집에 새 생명이 탄생한다. 가와세 나오미는 실제로 임신을 하기 전, 임신과 출산에 대한 동경어린 마음으로 이 장면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또 한명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올 때, 웅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슌의 얼굴에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가와세 나오미는 거의 언제나 더없이 적절한 캐스팅을 해왔지만, 슌을 연기한 소년의 얼굴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모든 마음을 전달해준다. 영화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끝나는 듯하다가, 문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가 땅 아래, 지붕들을 쳐다본다. 두 소년의 등 뒤를 위태롭게 따라가다가 한 소년을 잃은 상실감으로 가득 찼던 첫 장면과 달리 새 생명의 탄생을 목격하고 다다른 마지막 장면은 한결 넓어졌다. 하늘을 부유하는 카메라가 다시 땅으로 내려올 때, 가와세 나오미의 세계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출산> 가와세 나오미도 이제 엄마가 되었다. 할머니는 죽었지만, 그녀의 세상에 또 한명의 가족이 들어왔다. 90살이 된 외할머니의 생존의 마지막 기록에 자기가 낳은 아이의 기록을 담고,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어서 늘 메말라 있었지만 어린 손녀의 결핍감을 채워준 할머니의 가슴과 새 생명에게 기꺼이 선사하는 자신의 가슴을 함께 담아냈다. 여기에는 어린 생명에 대한 감동과 죽음을 앞두고 늙어버린 할머니의 몸에 대한 서글픔,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과거에 대한 원망과 상처,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존한 아이와 함께 밀려드는 삶에 대한 책임감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한다. <사라소주>에서 임신부를 동경했던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의 엄마였던 할머니의 육신과 그녀와의 과거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결연하게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의지와 다짐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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