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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영상의 틀을 깨라! 르프레누와 특별전
정재혁 2008-04-30

5월6일부터 31일까지 연세대학교 inD극장에서

영상의 새로운 실험을 맛볼 기회가 찾아온다. 5월6일부터 31일까지 연세대학교 inD극장에서 프랑스 국립현대예술 스튜디오인 르 프레누아 특별전 <봄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of Seeing)이 열린다. 르프레누와는 영화학교 그랑제콜 이덱의 교수였던 알렝 플레셰와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 시안을 만들어 대규모 섬유공장을 영화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한 곳. 프랑스 정부의 지원하에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 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 부부를 비롯해 장 뤽 고다르, 마이클 스노, 안토니 먼타다, 차이밍량, 조첸 게르츠 등을 초빙해 매년 공동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될 작품은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르 프레누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 다큐멘터리부터 애니메이션, 실험영화와 설치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 42편이 6개의 ‘파노라마’로 나뉘어 선보인다.

파격적인 영상실험 돋보이는 42편의 작품 상영

짧게는 5분, 길게는 40분 정도의 단편들이지만 각각의 작품은 주제는 물론 영상과 형식에서 서로 다른 실험을 보여준다. 다섯편으로 이루어진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 중 세편인 <Hands up Motherfucker> <Livingman> <The Disordre of His Shirt and Tie>는 영화에서 하나의 클리셰가 된 이미지와 구도에 질문을 던져 이를 새롭게 형상화한 작품. 총을 든 남자와 이를 방어하려는 다른 남자를 화면의 양쪽 사이드에 배치한 뒤 화면 정가운데에 숲이 그려진 작은 스크린을 켜고 시작하는 <Hands up Motherfucker>는 남자의 숨소리에 따라 스크린의 크기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작았던 스크린도 점점 커지고 이내 화면은 스크린으로 가득 찬다. 검정 배경을 뒤로 서 있던 두 남자는 숲을 배경으로 대치하는 관계로 다시 그려지고 이 둘 사이의 긴장은 쫓고 쫓기는 사람의 심리로 설명된다. 연속되는 총성으로 시작하는 <Livingman>은 <Hands up Motherfucker>의 다음 장면처럼 이어지고 <The Disordre of His Shirt and Tie>는 담배를 피우는 한 늙은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다. 이미지의 부연 혹은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똑같은 상황이 어떻게 변이하는지를 하나의 상황을 예로 설명한다.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몬카다 감독이 연출한 <순환>, 중국의 젠첸리우 감독이 만든 <상하이 상하이>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순환>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 같은 일을 재치있게 담아낸 영화. 강을 앞에 두고 벤치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조금 뒤 한 남자가 강에 뛰어들고 카메라는 자리를 옮겨 한 레스토랑의 내부를 비춘다. 한 인물의 등장과 사라짐 이후 카메라는 다시 강가를 담는데 강물의 흐름과 차이를 두고 더 빨리 움직이는 카메라가 마을의 기묘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주민들은 강물에 뛰어들었던 남자를 따라 차례차례 몸을 던지고, 영화는 흘러가는 강물과 사람들의 떨어지는 행위만으로 마을의 공간을 묘사한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이에 따른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상하이 상하이>는 급변하는 도시 상하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하얀 벽에 사진이 한장씩 날아와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며 시작하는 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연출이 상하이란 공간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폐허가 된 집과 마주하고 있는 빌딩숲, 조형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도시의 스카이라인, 겉으론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아파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 안의 쓰레기들. <상하이 상하이>는 중국의 개방정책이 상하이에 가져다준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상치시키며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이 밖에 12각형의 공간과 4각의 링을 교차해 보여주며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Unlith>, 그림을 그리는 여자와 그 그림을 따라 움직이는 남자의 교감을 담은 <눈 그리고 타자 사이에서> 등도 흥미롭다. 진부한 이야기와 익숙한 화면에 지루했던 관객이라면 이번 특별전이 반가운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