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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과 진실의 결혼을 꿈꾸다
2001-11-07

<밤의 열기 속으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하스켈 웩슬러

이사온지 얼마 안되는 이 도시는 폭동에 휩싸여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시위가 진압 경찰과 병력을 만나 유혈극으로 변한 국가 폭력의 현장. 하스켈 웩슬러의 헨드헬드 카메라는 어머니 역을 맡은 여배우 베르나 블룸의 시선과 발길을 바짝 쫓아 헤맨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시카고. 그곳은 맥루헌이 ‘쿨 미디엄’이라고 불렀던 텔레비전의 속성과 현대정치에 관한 예리한 성찰을 보여준 극영화 <미디엄 쿨>의 촬영장이기도 했다. “웩슬러, 이건 실제상황이야!” 스탭 하나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고 난 직후, 경찰의 최루탄이 발사됐다. 극본, 감독, 촬영의 1인3역을 한 웩슬러가 “픽션과 시네마 베리테의 결혼”이라고 부르는 이 영화의 상영과 배급은 폭동의 복판으로 게릴라처럼 뛰어든 촬영과정 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미국 정부가 한동안 상영을 금지했고, 할리우드는 냉담했다. 대신, “거대한 시각적 충격, 영화로 만든 <게르니카>”,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영화”라는 평단의 평가가 <미디엄 쿨>의 훈장으로 남았다.

이때, 웩슬러는 이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로 이미 오스카상을 수상한 할리우드의 ‘유명촬영감독’이었다. 동시에 틈만 나면 현실 속으로 뛰어드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했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1922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그는 버클리 수학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지만, 일년만에 낙제한다. 그뒤 2차 대전 중 상선의 선원으로 복무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데플렌의 무기고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영화 제작의 꿈을 펼치려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그에게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이를 거울삼아 카메라조수로 다시 시작한 그는 교육과 산업에 관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된다. <후드럼 프리스트>(1961), <엔젤 베이비>(1961) 같은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를 촬영하던 그는 63년 이민자의 실상을 그린 엘리아 카잔의 <아메리카 아메리카>에 이르러 할리우드의 주류에 본격 합류한다. 강렬한 흑백화면이 인상적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66년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고, 67년 노만 주이슨의 <밤의 열기속으로>를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두 번째 아카데미의 영광을 안겨준 할 애쉬비의 <바운드 포 글로리>(1976)는 차분한 색조의 아름다운 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할과는 <귀향>(1978)에서도 함께 작업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아메리칸 그래피티>(1973)에서는 비쥬얼 컨설턴트로 독특한 영상을 그리는데 일조한다. 하스켈 웩슬러를 주목할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인터뷰 위드 마이 라이 베테란>, <인드로덕션 투 더 에너미>, <언더그라운드>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쟁점들을 이끌어냈다. 그의 렌즈는 때로는 핵확산을 반대하고, 때로는 억울한 자의 정당함을 입증하려하며, 때로는 도주하는 CIA요원을 비추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작업이 단지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스켈 웩슬러의 이상은 여전히 ‘픽션과 진실의 결혼’이다. “다큐멘터리는 좋든 나쁘든 실제 삶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잘 만들어진 극영화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진실이 담겨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 목전에 닥친 거짓되게 그려진 사회에 대적할 유일한 길이다.” “극영화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며, 그 외의 일들은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것 거기서 기쁨을 느낀다. 물론 다큐멘터리나 광고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나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명과 배치를 조절하는데 자유롭지 못한 다큐멘터리 작업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운 극영화의 공간과 프레임을 구성하는 데까지 영향을 끼치며,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은 극영화 속에 사실성 있는 화면을 그려내는 데 밑바탕이 되어 준 것이다. “프레임 하나하나가 미술작품”이라는 찬탄을 유발하는 그런 화면들.

최근 우디 앨런과의 작업이 취소돼, 어떤 작품으로 다시 그를 만나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진실에 기반한 신념에 차있는 웩슬러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촬영

(61, 2001)(TV) 빌리 크리스털 감독

<더 맨 온 링컨스 노즈>(The Man on Lincoln’s Nose, 2000) 다니엘 라임 감독

<굿 커드 배드 커드>(Good Kurds, Bad Kurds, 2000) 케빈 맥키어넌 감독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하스켈 웩슬러 감독

<림보>(Limbo, 1999) 존 세일즈 감독

<머홀랜드 폴스>(Mulholland Falls, 1996) 리 타마호리 감독

<진실과 탐욕>(The Rich Man’s Wife, 1996) 에이미 홀든 존스 감독

<캐나다 베이컨>(Canadian Bacon, 1995) 마이클 무어 감독

<론 이니쉬의 비밀>(The Secret of Roan Inish, 1994) 존 세일즈 감독

<베이브>(The Babe, 1992) 아서 힐러 감독

<타인의 돈>(Other People’s Money, 1991) 노먼 주이슨 감독

<폴 뉴먼의 블레이즈>(Blaze, 1989) 론 셸톤 감독

(Three Fugitives, 1989) 프랜시스 베버 감독

<범죄와의 전쟁>(Colors, 1988) 데니스 호퍼 감독

<엉클 밋>(Uncle Meat, 1987) 프랭크 자파 감독

<메이트원>(Matewan, 1987) 존 세일즈 감독

<사랑도박>(The Man Who Loved Women, 1983)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Lookin’ to Get Out, 1982) 할 애쉬비 감독

<귀향>(Coming Home, 1978) 할 애슈비 감독

<바운드 포 글로리>(Bound for Glory, 1976) 할 애슈비 감독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1976) 하스켈 웩슬러 감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밀로스 포먼 감독

<적과의 대면>(Introduction to the Enemy, 1974) 하스켈 웩슬러 감독

<트라이얼 오브 카톤스빌 나인>(Trial of the Catonsville Nine, 1972) 고든 데이빗슨 감독

<인터뷰 위드 마이 라이 베테랑>(Interviews with My Lai Veterans, 1970) 하스켈 웩슬러 감독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하스켈 웩슬러 감독

<화려한 패배자>(The Thomas Crown Affair, 1968) 노먼 주이슨 감독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 1967) 노먼 주이슨 감독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마이크 니콜스 감독

<버스>(The Bus, 1965) 하스켈 웩슬러 감독

<러브드 원>(The Loved One, 1965) 토니 리처드슨 감독

<베스트 맨>(The Best Man, 1964) 프랭클린 스카프너 감독

<아메리카 아메리카>(America, America, 1963) 엘리아 카잔 감독

<페이스 인더 레인>(Face in the Rain, 1963) 어빙 커슈너 감독

<로니>(Lonnie, 1963) 윌리엄 할레 감독

<후들럼 프리스트>(Hoodlum Priest, 1961) 어빙 커슈너 감독

<엔젤 베이비>(Angel Baby, 1961) 폴 웬드코스 감독

<사베지 아이>(The Savage Eye, 1960) 벤 메도우 감독

<스터드 로니간>(Studs Lonigan, 1960) 어빙 레네 감독

<파이브 볼드 우먼>(Five Bold Women, 1959) 조제 로페즈 포르틸로 감독

<스테이크 아웃 온 도프 스트리트>(Stakeout on Dope Street, 1958) (uncredited) 어빙 커슈너 감독

제작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러브드 원>(The Loved One, 1965)

각본

<정글의 반란>(Latino, 1985)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버스>(The Bus, 1965)

감독

<버스 노동조합>(Bus Rider’s Union, 1999)

<정글의 반란>(Latino, 1985)

<버스II>(Bus II, 1983)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1976)

<적과의 대면>(Introduction to the Enemy, 1974)

<브라질:고문에 관한 보고>(Brazil: A Report on Torture, 1971)

<미디엄 쿨>(Medium Cool, 1969)

<버스>(The Bus,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