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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으로의 항해
2001-11-08

존 포드 감독의 <귀향>

Long Voyage Home

1940년, 감독 존 포드 출연 존 웨인

<EBS> 11월11일(일) 낮 2시

“난 서부극을 만드는 감독입니다.” 생전의 존 포드 감독은 언론과 접촉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멘트를 즐겨 날리곤 했다. 할리우드영화에서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인 서부극의 ‘아버지’격인 존 포드로선 당연한 언급이다. 그런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서부극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보면 오해다. 그는 세 작품에 한편꼴로 서부극을 만들었으며 코미디와 가족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귀향>을 만든 1940년은 존 포드에겐 전성기라고 할 만한 때다. 초기걸작인 <역마차>(1939)와 아카데미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등의 수작을 연이어 만들던 시기였으니까. 존 포드의 영화치곤 지명도가 높지 않은 작업인 <귀향>은 망망대해를 떠돌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는 남성들의 세계를 담는다. 흔히 존 포드 감독에겐 그가 일생 동안 천착했던 몇 가지 주제가 있다고 평가되는데 영화는 그중 하나인 ‘이민자들의 거친 삶’이라는 주제를 간직하고 있다. 영화엔 존 포드의 분신격인 존 웨인이 출연하고 있지만 비중이 생각외로 크지 않다. <귀향>은 배우들 앙상블 연기에 의존한 영화로, 토머스 미첼과 배리 피츠제랄드 등 존 포드 영화의 감초격인 배우들이 얼굴을 내민다. 선원 올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하는 것이 꿈. 그는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만취한 상태가 되곤 하는데 번번이 고향으로 갈 계획을 중도에 포기한다. 스미티와 드리스콜 등은 각자 과거를 지니고 있다. 형제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진 채 떠도는 선원들인 것이다. 배가 항구에 닻을 내리자 선원들은 또다시 술로 밤을 지새우는데 올리에게 이번엔 술집여성이 다가와 유혹하기 시작한다.

<귀향>은 아름다운 영화다. <시민 케인>으로 잘 알려진 그렉 톨랜드가 촬영감독을 맡고 있는데 <시민 케인>에서 그렇듯 톨랜드는 필름누아르를 연상케하는 촬영으로 빛과 어둠의 세계를 양분한다. 명암대조가 뚜렷한 화면으로 영화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거다. 톨랜드는 조명을 극소화하고 인물들 움직임에 맞춰 여리고 희미한 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선상에서 촬영한 장면은 사실감이 물씬 배어난다. 술집여성이 올리를 유혹하는 대목에서 그녀를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한다든가 영화 종반부에서 선상을 가로지르는 작은 빛줄기 하나로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은 확실한 대가의 솜씨다. 영화의 특수효과도 뛰어나다. 선원들은 폭풍과 싸우고, 전투기의 공격을 받으면서 항해를 계속하는데 배를 서서히 침식하듯 밀려드는 바닷물장면은 이 영화가 60여년 전에 제작되었음을 잠시 망각하도록 만든다. <귀향>에서 모진 바다와 싸우던 선원들은 무사히 항구에 들어선다. 그런데 영화가 좀 엉뚱하게 흘러간다. 의기양양한 영웅처럼 보이던 그들은 만취한 상태에서 주먹다짐을 하고 엉겨붙어 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바다에선 최고였지만, 막상 육지로 나와선 보잘것없는 3류 인생일 따름이다. 이 가엾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원들은 고향으로 향하는 여정을 결코 끝내지 못할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