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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의 섬, 영욕의 100년
2001-11-08

<물랑루즈>의 무대가 된 물랑루즈의 역사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80년대 초반 즈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극장식 레스토랑이 큰 인기를 누렸었다. 널찍한 무대가 전면에 있고 그 아래로 많은 테이블들이 배치되어 있어,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는 것이 그런 유흥업소들의 특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어린 나이여서 직접 그런 곳에 가볼 수 없었던 지금의 30대 초·중반들이, 대표적인 극장식 레스토랑이었던 ‘홀리데이 인 서울’이나 ‘초원의 집’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코미디언 이주일의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깐요’라는 멘트로 화제가 되었던 당시의 광고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랑루즈’라는 이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알려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홀리데이 인 서울’ 등과 함께 당시를 풍미하던 대표적인 극장식 레스토랑 중 하나로 ‘무랑루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주빌리쇼, 방콕의 알카자쇼 등과 함께 세계 3대 쇼로 알려진 프렌치 캉캉쇼를 볼 수 있는 명소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그 명소의 이름이 ‘물랑루즈’라는 것을 아는 이는 우리 또래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프랑스 물랑루즈의 형식과 쇼를 베껴와 서비스를 시작한 그 극장식 레스토랑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가 개봉되면서, 그 사라져버린 극장식 레스토랑이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장면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가 있다.

그뒤로 한국사람이 파리를 방문하면 반드시 들르는 장소가 된 물랑루즈는,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빨간 풍차’의 모양을 하고 있는 물랑루즈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891년 10월6일. 1885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성공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사회적, 문화적 전성기였다. 당시 다양한 뮤직홀, 카페, 카바레 등이 인기를 끌던 프랑스에서 물랑루즈의 등장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여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무대와 사방에 걸려 있는 거울과 그림들 그리고 코끼리로 장식된 정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리지앵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당시 무명이었던 젊은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그린 것을 계기로, 일약 스타 화가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물랑루즈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흥겨운 폴카 리듬을 현대적으로 바꾼 뒤, 시끌벅적 신나면서도 섹시한 무희들의 춤을 섞은 프렌치 캉캉쇼였다. ‘통제가 불가능한 소녀들’(Unruly Girls)이라는 별명을 가진 최소 170cm 이상의 늘씬한 미녀들이 치마를 들추는 쇼에 저항할 수 있는 파리지앵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파리의 엔터테인먼트계를 휩쓴 프렌치 캉캉의 무희들에 대해 1898년 발매된 <빠리의 밤 가이드>라는 잡지는 ‘명성에 걸맞게 성스러운 난장판을 만들기 위해 춤을 추는 젊은 여성 전사들’로 표현했을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이 캉캉춤이 1861년 영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부도덕해 보인다는 썰렁한 반응 때문에 사장될 뻔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는 문화적인 괴리가 있었던 것.

하지만 물랑루즈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02년 말 새롭게 물랑루즈의 운영을 맡은 폴-루이스가 물랑루즈를 고급 콘서트홀로 바꾸려 시도하다가 9개월 만에 그만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물랑루즈의 운영을 담당했지만 옛 영화를 되찾지는 못했던 것이다. 결국 1차대전이 시작할 때까지, 물랑루즈는 극장식 카바레로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오페레타의 공연장소로 운영된다. 그러다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또다른 운영자를 만나 미국식 뮤지컬에 영향을 받은 <뉴욕-몽마르뜨>라는 제목의 희극을 상영하면서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하지만, 이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이내 관객들을 끌어모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파리지앵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던 물랑루즈는 2차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프랑스 점령으로 인해 최고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물랑루즈가 부활을 노래한 것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다. 저녁을 먹으면서 쇼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성격을 변경하고, 나체의 무희들이 헤엄치는 거대한 수족관을 만들면서까지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계속했던 것. 그 결과 물랑루즈는 세계적인 명소로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고, 지난 1988년엔 전세계의 스타와 명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개업 100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뒤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이 흐른 시점에서, 영화 <물랑루즈>가 개봉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참 시의적절해 보인다. 특히 바즈 루어만 이상으로 물랑루즈의 화려함과 섹시함을 그려낼 감독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물랑루즈의 화려한 부활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물랑루즈> 공식 홈페이지 http://www.clubmoulinrouge.com/

물랑루즈 공식 홈페이지 http://www.moulinrouge.fr/

로트렉과 물랑루즈 http://www.interesting.com/stories/lautr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