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명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일곱개의 밥 딜런. 과연 어떤 사실들에 근거를 두고 조합된 걸까. <아임 낫 데어>를 볼 때 이 인물들의 배경을 알면 흥미로워지지만, 한번 막히면 골치가 아프다. 차례대로 보자.
1. 아르튀르 랭보. 그 랭보가 맞다. 영화에서도 시인으로 소개되는 이 인물은 단 한번도 탁자를 벗어나지 않은 채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하는데, 토드 헤인즈는 1965년과 1966년 기자회견장에서의 밥 딜런의 모습을 기초로 이 인물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2. 우디 거스리. 1912년 7월14일에 태어나 1967년 10월3일에 세상을 뜬 포크 뮤직 싱어송 라이터다. 젊은 시절 밥 딜런은 우디 거스리를 정신적 우상으로 삼았으며 그의 흉내내기에도 여념이 없었다고 주변인들은 증언한다. 실제로 밥 딜런은 말년에 뉴저지 모리스타운의 그레이스톤 정신병원에 수감돼 있던 우디 거스리를 여러 차례 병문안한 적이 있고, 노래도 불러주었다고 한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흑인 소년 우디가 어느 백인 남자를 병문안하는 것으로 바뀌어 연출됐다. 밥 딜런은 청년 시절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씌어 있는 카드를 들고 다니며 우디 거스리의 친필이라고 말했다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임 낫 데어>에서처럼 우디 거스리의 기타에 “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죽일 것이다”(THIS MACHINE KILLS FASCISTS)라고 쓰여 있던 건 사실이다.
3. 잭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작가 잭 케루악에서 가져왔을 공산이 크다. 이 시기에 밥 딜런은 <<The Freewheelin’ Bob Dylan>> <<The Times They Are A-Changin’>> 같은 초기 앨범을 냈다. 영화 초반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가 오가는 쇼장면은 1964년 스티브 앨런 쇼에 실제 출연했던 밥 딜런의 모습을 응용한 것이다. 잭을 기억하는 포크 뮤직 여가수 앨리스는 조앤 바에즈를 모델로 했으며 이 인터뷰 장면은 마틴 스코시즈의 <노 디렉션 홈>에서 빌린 것이 분명하다. <아임 낫 데어>에서 잭은 사라져 목회자 존으로 돌아왔다고 상상하지만, 밥 딜런은 1966년 7월29일 오토바이 사고 뒤 몇년간 칩거하며 라이브를 하지 않았을 뿐, 앨범을 꾸준히 냈으며 목회자가 되지는 않았다.
4. 목사 존. 밥 딜런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기독교와 유대교에 심취한 <<Slow Train Coming>>(1979) 등 몇장의 앨범을 낸 적이 있다. 영화에서 존이 부르는 <Pressing on>은 1980년 앨범 <<Saved>>의 수록곡이다.
5. 영화배우 로비는 전적으로 가상의 인물.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밥 딜런의 연애사와 가정사에 빚지고 있다. 클레어는 수즈 로틀로(<<FREEWHEELIN’ BOB DYLAN>> 앨범 표지에 밥 딜런과 포옹하고 걷고 있는 여인)와 첫 번째 부인 사라 라운즈를 결합한 인물이다.
6. 쥬드. “많이 웃었고, 담배를 많이 피웠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들었고, 가슴을 붕대로 감은 채 빛으로 걸어나갔다.” 쥬드 역을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케이트 블란쳇이 한 말이다. 1965년에서 67년까지 각종 공연에서 야유를 받던, 그리고 엘런 긴즈버그와 교분을 나누던, D. A 페니 베이커의 다큐 <뒤돌아보지마라>에 출연하던 시기의 밥 딜런이다. “당신처럼 저항음악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는 황당한 질문에 더 황당하게 “136명? 136명에서 142명?”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1965년 LA 기자회견장에서 실제 있었던 일.
7. 빌리.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빌리 더 키드에서 가져온 것이 확실하다. 밥 딜런은 이 영화에 주인공 빌리가 아니라 그를 따르는 칼 던지기의 명수 앨리아스로 출연했다. 대사는 거의 없다. 밥 딜런은 사운드트랙을 맡았으며 익숙한 곡 <Knockin’ On Heaven’s Door>가 실려 있다. 주드 에피소드에서 언론인 미스터 존스로 등장한 배우 브루스 그린우드는 빌리 에피소드에서 팻 가렛(<관계의 종말>에서 빌리의 적이자 친구)으로 다시 나오며, <아임 낫 데어>를 관통하고 있는 미지의 내레이터는 바로 <관계의 종말>에서 빌리 역을 했던 배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