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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또 새로운… 발견은 계속된다
2001-11-09

신상옥 회고전 기획에서 상영까지, 그 숨가쁜 7개월

한상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신상옥 회고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7개월 전인 지난 4월의 일이었다.

원래 이 회고전은 지난 해 제 5회 부산영화제를 위해서 기획되었지만, 몇 가지 사정에 의해‘춘향전 회고전'으로 변경되었었다. 나는 일단 이용관 전프로그래머에 의해 작년에 준비된 자료들을 토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지난 해 영상자료원 상영 시에 녹화한 테이프들로라도 가능한 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들을 많이 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깜박거림이 심해 영화를 보는 도중 종종 회의주의자로 변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내시> <로맨스 빠빠> <벙어리 삼룡이> <상록수> 등 전에 본 작품들도 다시 보았고, <어느 여대생의 고백> <동심초> <자매의 화원> <지옥화> <젊은 그들> <로맨스 그레이> <쌀> 등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를 처음 만난 것도 4월 경이었다. 일단 올해 회고전을 열기로 한 사실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상영작의 결정은 협의해서 하기로 했다. 두 번째로 신상옥 감독을 만났을 때 나는 70여편에 이르는 필모그래피 가운데 5, 60년대 작품을 중심으로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신상옥 감독은 이에 대해 북한에서 만든 작품과 90년대 작품 <증발>에 관해서 애정을 보이면서 이번 상영에 꼭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증발>의 상영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보이는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었지만, 좀 낯설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신상옥 감독에게 정중하게 거절하려는 의도에서, 비디오숍에서 이 영화를 다시 빌려 보았다.

그러나 신상옥감독의 여러 영화를 거친 이 시점에서 <증발>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즉 60년대 기간 동안 대형 사극을 연출한 뒤, 현실 문제를 중시하는 북한 시절의 영화를 거친 후에 나온 귀결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또 다시 두 번을 보고 이틀 간 고민한 뒤 <증발>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신상옥 감독의 전체 필모그래피 안에서 지니는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월 말 경에 <증발>과 <탈출기>를 포함해 8편을 결정했다. 물론 여러 번 교체 과정을 거친 후였다. 이미 영문 자막이 있는 프린트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내시> <이조여인 잔혹사> <증발>을 정했고, 새로 영문 자막을 첨가할 작품으로 <지옥화> <연산군> <천년호> 그리고 <탈출기>를 결정해 녹취 작업과 대사의 영어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회고전에 관련된 영문 서적도 만들어야 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세계를 조망하는 글을 내가 쓰기로 했고, 몇몇 테마를 골라 필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신상옥 감독의 작품 세계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선정 작품 외에 다른 작품들도 계속 보아야 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통해 <꿈> <무영탑>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등의 영화들을 보았다. 그러다가 9월 초에 발견한 영화가 <다정불심>이었다. 출시된지 오래 된, 그래서 안좋은 화질에 화면도 텔레비전 비율로 바뀐 비디오였는데도, 솔직히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 영화는 특히 시각적 탁월성, 그리고 히치콕의 <현기증>을 생각나게 하는 현대적 테마가 놀라웠다. 다음 날 영상자료원에 문의해 프린트를 볼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프린트는 없이 네가 필름만 보존되어 있다는 답이 왔다. 필름으로 작품의 온전한 가치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비디오로 한 번 다시 본 뒤 모험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프로그램팀에서 실무를 진행하는 양정화씨에게 <다정불심>을 추가하자고 말했다. 그 동안 몇 차례 같은 상황을 겪은 양정화씨는 이번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회고전은 매 단계마다 업무가 매우 많다.) 나는 회고전을 성사시킨 뒤의 보람을 생각하면서 좀더 고생하자고 했고, 양정화씨는 다른 말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무척 고마웠다. 이렇게 <다정불심>이 추가되고, 다시 9월 하순 <탈출기>가 <소금>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쳐 아예 두 편을 다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모두 10편으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준비 시간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20편 정도를 골라 다시 신상옥 회고전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회고전 개막을 눈앞에 둔 지금 안타까운 것은 비용 부족으로 새 프린트에 영문 자막을 새기지 못하고, 원래 계획과 달리 레이저 영문 자막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신상옥 회고전은 벌써 내년 2월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며, 프랑스 도빌에서도 <다정불심> 등 몇 작품으로 회고전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영문 자막이 없는 프린트들은 실제로 해외 상영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지금 신상옥 감독 개인이 새 프린트들에 영문 자막을 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좀 더 많은 예산이 영상자료원에 묻힌 뛰어난 작품들의 영문 자막 프린트를 위해 배정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