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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총 쏘는 여성이 뿜어내는 성적 판타지

<건 크레이지> Gun Crazy, 조세프 루이스, 1950

<건 크레이지>

권총만큼 노골적인 성적 상징도 드물다. 손잡이와 총신,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총알까지, 권총은 남성 상징의 대표적인 소재다. 게다가 총으로 빌릴 수 있는 폭력까지 생각한다면 권총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서부의 총잡이가, 또는 갱스터의 영웅이 권총을 휘두를 때, 이는 남성 권력의 독점적 성격을 증명하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세상의 중심에 권력을 가진 남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권총을 여성이 갖고 놀면 어떻게 될까?

바지를 입고 총을 쏘며 담배를 피우는 여성

남근을 상징하는 세 가지 대표적인 소재는 담배, 긴 다리, 그리고 총이다. 게리 쿠퍼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려보자. 긴 다리는 직접적인 남근의 상징이고, 이런 남자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권총을 쏘는 장면은 남성성이 세배로 증폭되어 표현되는 순간이다. 남성의 동물적인 성적 매력이 화면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세프 루이스 감독의 <건 크레이지>(1950)에서는 이런 역할을 뜻밖에도 여성이 한다. 서커스단과 함께 돌아다니며 총 솜씨를 자랑하는 여성인 로리(페기 커밍스)가 바로 그녀다. 로리는 사람의 머리 위에 풍선을 올려놓고 윌리엄 텔처럼 정확히 풍선만 맞히는 명사수다. 그녀는 마치 남자처럼 옷을 입고 있다. 미끈한 다리의 곡선이 한눈에 보이도록 몸에 착 달라붙은 바지에 부츠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카메라는 이런 그녀의 뒷모습을 아래에서 위로 잡아, 그녀의 성적 매력을 더욱 과장해 보여준다. 쭉 뻗은 다리, 풍만한 엉덩이, 타깃을 겨누는 여유있는 자세는 그녀의 성정체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여성적’ 성적 매력을 가진 보통의 팜므파탈과는 또 다른 악녀, 곧 ‘남성성’을 몸에 걸친 팜므파탈이 탄생한 것이다.

그녀 앞에 역시 ‘권총에 미친’ 남자 바트(존 달)가 나타난다. 이 남자는 어릴 때 단지 권총을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쇼윈도의 총을 훔치다 소년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바트는 총을 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을 느낀다. 키가 훤칠한 핸섬보이인 그는 총을 쏘는 것만 좋아할 뿐 총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다. 우연히 서커스에 갔다가 그녀에게 총 쏘기 내기를 걸어, 보기 좋게 이겼고, 동시에 그녀의 마음까지 빼앗았다.

총 쏘는 기술만 가진 두 남녀가 만났으니 뭘 하겠는가. 이들의 본격적인 강도행각과 더불어 <건 크레이지>의 이야기는 ‘미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총을 쏘며 남성의 영역을 침범한 여성과 단지 쏘는 행위를 좋아하는 남자가 만났으니, 둘 사이의 관계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뻔하다. 로리는 강도짓을 사주하고, 바트는 마지못해 총을 든다. 총을 보면 흥분하고 총을 쏘는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는 마치 미성년을 다루듯 총 쏘는 행위에만 탐닉하는 순진한 바트를 이끄는 것이다. 바트는 어머니 앞의 아들처럼 수동적으로 그녀의 요구에 응한다.

‘원숏 은행 강도 시퀀스’의 긴장감

로리가 얼마나 총을 좋아하는지는 이 영화의 유명한 시퀀스인 ‘원숏 은행 강도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두 남녀는 로데오 카니발에 참가하는 척하고 은행을 털기로 한다. 캐딜락을 훔친 뒤 은행으로 접근하는 순간부터 돈을 털어 나올 때까지 약 4분간을 영화는 단 한번의 숏으로 처리하고 있다. 긴 롱테이크의 강도장면은 관객을 일시에 주인공들과 동일시시켜 우리는 혹시 그들이 붙들릴까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바트가 은행 안으로 총을 들고 들어간 사이, 하필이면 그때 경찰이 이곳을 순찰 중이다. 로리는 차에서 내려 경찰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고 이런저런 말을 하다, 그의 허리에 있는 권총을 살짝 만진다. ‘총에 미친’ 그녀의 이 동작 하나, 다시 말해 강도짓을 하는 순간에도 총을 보면 흥분하는 이 동작이 그녀의 캐릭터를 한순간에 설명한다. 과도하게 공격적인 성적인 태도, 팜므파탈로서의 로리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파멸에 이른다. 그녀는 자신의 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늘씬한 총을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필름누아르의 팜므파탈은 대개가 남성 판타지의 결과다. 억압됐던 성적 상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트의 상상은 유아기 혹은 수동적 남성의 소망에 가깝다. 혼자 총을 쏘며 쾌락을 느꼈던 소년이 총 쏘기를 좋아하는 다른 여성을 만난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땐 그 어떤 남자보다 더욱 총을 잘 쏘며 행위를 주도하고, 사랑을 할 때도 미성년에 가까운 바트의 주저함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여성이 로리이다. 바트에겐 그녀의 이런 적극성이 치명적인 매력이었는지 몰라도, 성적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는 여성은 장르의 법칙에 따르면 반드시 처벌받게 돼 있다. 관계의 주도권은 남성의 영역이고, 로리 같은 여성은 남성 고유의 권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여성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시키는 ‘거미 여인’의 캐릭터가 팜므파탈을 대표하던 시기에, 로리는 모호한 남성성으로, 동시에 성적 충족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공격적인 여성 이미지로 또 다른 남성 판타지를 자극했던 것이다.

다음에는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Sherlock Jr., 1924)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유아기를 벗어나 성숙해가는지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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