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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감정의 밀도를 촘촘히 쌓아나가는 사랑 이야기
장영엽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8-06-17

김현진 감독의 <안녕>

KT&G 상상마당이 주최하는 ‘이달의 단편영화’(4월)로 선정된 김현진 감독의 <안녕>(Tide of Love)은 이미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다. 헤어진 연인은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이 자주 시간을 보내던 바닷가에서 재회한다. 한때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이들은 늘 앉던 벤치에서 어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영화는 별다른 대사없이 남자와 여자의 행동을 보여주는데, 미묘하게 달라진 그들의 습관이 이별 뒤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여자는 싫어하던 담배를 입에 물고, 남자는 좋아하던 트럼펫을 더이상 불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디테일을 조명하면서 감정의 밀도를 촘촘하게 쌓아나가는 것이 <안녕>의 장점이다. 김 감독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멜로드라마에 요구되는 감수성을 조절해냈다. 첫 연출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직접 만난 김현진 감독은 수줍은 인상의 부산 사나이였다. 그는 올해 경성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만간 영화를 찍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안녕>은 그의 첫 영화이자 대학 졸업작품이다. 영화를 전공했는데 왜 이렇게 첫 작품이 늦어졌냐고 묻자 “학교를 다닐 때는 녹음이랑 사운드 믹싱 공부를 주로 해서 카메라를 잡을 일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소리’를 공부한 경험은 헛되지 않다. <안녕>에서 파도 소리와 트럼펫 소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니까.

카메라 앞에는 늦게 섰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는 김 감독이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다. “2005년 서울에서 드라마 <해신>과 <마이걸>의 야외촬영 카메라팀으로 일했다. 그때 마로니에 공원에서 아는 선배를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다. 거기서 그를 세번쯤 만나고 나니 선배랑 처음 만났을 때, 두 번째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불현듯 특정한 사람과 특정 장소에 갔을 때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는 에피소드가 연상됐다.” 그는 언젠가 이런 주제의 시나리오를 쓰리라 다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화된 건 친구의 이별 얘기를 들은 다음이다. 애인과 8년 사귄 친구가 헤어졌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김 감독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이별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과거와 현재가 밀물처럼 교차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등을 돌린 연인들이 묵묵히 돌아서는 멜로드라마 <안녕>은 이렇게 탄생했다.

혹시 영화에 반영된 에피소드 중 자기 자신의 경험은 없었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는데, 김 감독은 “엇비슷한 경험조차 없다”고 한다. 대신 영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던 건 유행가, 그중에서도 통속적인 가사의 사랑 노래다. 김현진 감독은 헤어짐을 다룬 노래에는 일정한 플롯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른 목소리와 다른 스타일로 노래하지만 유행가가 말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연인을 잊겠다는 다짐과 비록 함께하지 못하지만 추억만큼은 간직하겠다는 다짐. 김 감독은 후자에 더 관심이 많다. “헤어졌고, 그래서 슬프지만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영화로 표현하고자 했다.” <안녕>에서 김 감독이 선택한 유행가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윤종신의 <배웅>이다. 그는 이 노래가 “이별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신파”라 생각해 원작자인 하림에게 곡을 사용하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고, 곧 허락을 받았다. 7월1일부터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파리시네마페스티벌에서도 그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퍼질 예정이다(<안녕>은 이 영화제의 단편영화 경쟁부문에 선정됐다). 다음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욕망을 좇는’ 남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다는 김현진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