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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어”
2001-11-10

부산에서 회고전 여는 한국영화의 거인, 신상옥감독

지난 11월5일, <씨네21>은 회고전이 열리는 신상옥 감독을 미리만났다. 1949년 데뷔작 <악야>로 시작해 국내 유일의 메이저영화사 신필림을 거쳐 검열로 고통받고, 또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한국영화사의 거장, 신상옥. 그와의 대화를 여러분에게 전한다. 드디어 부산에서도 감독님의 회고전이 열리네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그동안 회고전하면 밤낮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만 틀었거든. 내가 60년대에 영화 만들고 끝난 사람도 아닌데. 이북에서 만든 것까지 포함시킨다면 하겠다고 말했지.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소금>하고 <탈출기>가 상영되는데, <탈출기>는 내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고 있어요. 감독님의 50∼60년대 작품들은 충격적이에요.남한에서 만든 것 중에 제일 좋은 작품은 <상록수>야. <성춘향>이 성공했기 때문에 <상록수>는 돈 생각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만들었어. <쌀>도 비슷하지. <천년호>는 그땐 별거 아니었는데 요즘 사람들이나 밖에서들은 많이 좋아하더구만. 시체스에서는 상도 받고. 멜로, 액션, 사극, 참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는데, 그토록 다양한 장르를 시도할 수 있었던 배경이 뭘까요.욕심이지. 죽기 전에 이것저것 하려고. 또 블록 부킹 때문이기도 했어. 회사를 유지하려면 일년에 스물여덟편은 찍어야 했거든. 또 내 딴엔 테크닉이 확실하다고 뭐든지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을 거야. 1960대는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중흥기라 생각되는데, 당시와 요즘, 두 시기를 비교하신다면.별로 다르지 않아요. <성춘향> 때 40만명이 들었는데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면 요즘 흥행작과 비슷한 수치라고 봐야 할 거야. 다만 요즘 영화들은 곁말(욕설) 빼면 싱거워져서… 무엇보다 과거는 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요즘이 낫다고 해야겠지. 카메라도 좋고. <성춘향> 때 반상의 차별 철폐를 암시하는 등 시대가 뭘 요구하는지 알고 있는 영화라는 평이 있었죠.뭐, 그런 어려운 얘기를. 어쨌든 한국적 해학은 담으려고 했지. <성춘향>은, 설화처럼 알기 쉽게 각색하려고 했지. 하지만 영화가 잘된건 나 혼자 우수해서가 아니었어. 렌즈가 독일 거였고 현상도 일본에서 했고 배우 앙상블도 좋았지. 내가 제일 크게 생각하는 수확은 고무신 에피소드인데, 원전 춘향전의 맹점이 뭐냐면, 춘향이랑 이도령이 한번도 만나지 않고 좋아하는 거야. 근데 가까이 안 보고 예쁜지 안 예쁜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신발 벗은 거 찾아오라 그래서 춘향이 얼굴을 보게 했지. 요즘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어린이가 구조적으로 중요하게 등장하는 영화가 없는 것 같아요.난 절대로 주인공 두 사람을 얘길 안 시켰어. 그랬더니 다 찍었는데 극장 상영할 길이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여러 가지를 더 찍었지. 김희갑씨가 시계 빌리러 가는 거라든지, 밥값 안 내면 쫓겨난다고 오고가는 것, 시어머니가 며느리더러 시집가라고 하는 것, 등등. 끝까지 얘기 안 시키느라 힘들었어. <지옥화>는 그때 사회상이 굉장히 압축돼 있으면서 장르적 숙련성 또한 초기작이라고 믿기 힘들던데요.<지옥화>를 50년 만에 독일에서 처음 봤는데 나도 좀 놀랐지. 되게 열심히 찍었더라고. 그거 찍을 때 카메라가 잘 안 돌아가니까 연필로 돌리면서 찍었는데. 근데 프린트가 상태가 좋지 않은 게 원판 없어져서 듀프 딴 거라 그래.연출수업기에는 어떤 영화들을 주로 보셨나요.내가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채플린하고 나운규. 중학교 때 우리 집 앞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극장이 있었거든. 거기서 채플린의 <모던타임스>,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이니 하는 걸 다 봤어. 내 영화 <벙어리 삼룡이>에 나오는 손장면은 나운규 영화에서 따온 거야. 기술적인 면으로는 최인규 감독한테 많이 배웠지. 운영하시던 영화사 신필름이 결정적으로 힘들어진 이유는 뭐였나요.검열 때문이야. 미칠 지경이었지. 정치적인 건 말할 것도 없고 미풍양속이란 것 때문에. <내시> 가지고는 음란죄로 유죄판결까지 받았어요. 대중 앞에서 음란행위했다는 건데, 거기서 말하는 대중이라는 게 스탭들이거든. (웃음) 게다가 윤정희라는 애가 어디 벗을 애야? 브래지어도 하고 핫팬츠도 입었는데, 그랬는데도, 음란이라고… 끝으로, 고 이영일 선생님이 감독님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신 감독님은 워낙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한에서 영화 못 찍게 했으면 제발로라도 북한에 갔을 거라고. 정말 그러셨을까요?갔겠지. 동구라파만 됐어도 안 올 거였어. 우상숭배만 없었으면. 인터뷰 안정숙·김소희 정리 최수임·사진 정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