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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괴물가족을 만나기 전에
2001-11-14

<분노의 저격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배리 소넨필드

19세기 서부를 배경으로 한 활극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로 배리 소넨필드는 2000년 골든 래즈배리 선정 최악의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다. 전작 <맨 인 블랙>의 경이로운 흥행과 <아담스 패밀리>에서 보여주었던 탁월한 재능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부실한 스토리전개, 특수효과에만 치중된 형편없는 연출력. 연이은 분석과 질책들이 꼬리를 이었지만, 정작 영화팬들을 애끓게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코미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오늘을 살지만 그간 촬영감독으로 이룩해낸 예술적 기예까지 한편의 영화로 뭉뚱그려 폄하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흥행감독이기에 앞서 그를 주목하게 하는 힘, 그건 소넨필드가 새로운 영상에 대한 도전정신과 속도감 있는 카메라워크로 무장한 신세대 촬영감독의 기수였다는 점이다.

만약 영화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통령 후보로 정계에 진출해 있을 것이라는 말처럼 영화와의 인연에 앞서 그는 1953년 뉴욕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정치학도에 불과했다. 뉴욕대 영화과에 진학한 그를 영화계로 이끈 계기로 그는 조엘 코언과의 만남을 기억한다. 같은 유대인이라서였을까 서로 자석을 댄 듯 끌렸다는 소넨버그는, 빔 벤더스의 <미국친구>(1977)의 비주얼 스타일과 로비 밀러의 카메라워크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나눔으로써 감정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 당시는 카메라만 있으면 카메라맨 자격이 부여되는 식이었고, 졸업 뒤 16mm 카메라를 구입한 그는 카메라맨으로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선다.

1982년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다큐멘터리 <In Our Water>로 촬영감독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난 뒤, 코언 형제의 제의로 <분노의 저격자>의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주위사람들의 투자와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로 구성된 이 초저예산 영화는 감독 데뷔작을 선보인 코언 형제에게나 선명한 빛의 대비로 신선한 영상을 표출해낸 소넨필드에게나 뜻깊은 작품이었다. 필름누아르에 바탕을 둔 실험정신이 그득한 이 영화에 선댄스는 그랑프리를 안겨주었으며, 그해 <타임>이 선정한 세계 영화 베스트 10에 선정되는 성과를 기록한다. 코언 형제와의 만남은 곡예하는 듯한 크레인샷과 트래킹 샷의 절묘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는 기발한 영상의 코믹드라마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갈색톤을 주조로 하여 갱조직 내의 암투를 로맨틱한 영상으로 그린 블랙코미디 <밀러스 크로싱>으로 이어졌고, 영상화된 실험정신은 영화광들의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대니 드 비토의 <환상살인>과 로브 라이너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페니 마셜의 <빅>에서 의식적으로 코미디에 머물러 있던 소넨필드의 렌즈는 1990년 라이너와 함께한 심리스릴러 <미져리>의 황량한 영상으로 다시 한번 재평가받기에 이르며, 이를 지켜본 할리우드는 <아담스 패밀리>의 감독으로 그를 낙점한다. 소넨필드의 기발한 특수효과와 분장을 통해 창조된 독특한 몬스터 가족은 이제껏 괴기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블랙코미디를 선사하며, 파라마운트에 공전의 히트를 안겨준다. 이어, 전편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한 <아담스 패밀리2>와 감독의 역량에 대해 평단의 호응을 얻은 <겟쇼티>, 적절한 특수효과 사용으로 자신의 기교를 한껏 발휘한 <맨 인 블랙>의 성공으로 그는 할리우드 중견감독으로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촬영감독에서 연출로의 성공적인 진입을 두고 그는 “이 두 가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만족을 준다.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내 재량껏 표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감독으로 내 역할에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해주는 연출에 끌리는 게 사실이다”라고 한다. 또한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감독이 되었다면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촬영감독을 고용하라. 연기와 스토리에 전념하기 위해서 ‘왜 이 라이트를 여기에 설치해야 하지?’ 하는 식의 질문을 할 짬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담스 패밀리>에서 재기있는 촬영감독 오언 로이즈먼을, 이후 세편의 영화에서 도널드 피터먼을 고용한 이유이기도 하며, 촬영의 전권을 그들에게 일임하는 이유이다”라는 조언을 덧붙이기도 한다.

미국 테러의 여파로 최근 그는 개봉을 앞두고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던 코미디극 <빅 트러블>의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곤경에 처해 있다. 전편의 실패를 말끔히 씻어줄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기지를 다시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 관객은 또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두어야 할 듯하다.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촬영

<미져리>(Misery, 1990) 로브 라이너 감독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 1990) 조엘 코언 감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 로브 라이너 감독

<빅>(Big, 1988) 페니 마셜 감독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1987) 조엘 코언 감독

<환상살인>(Throw Momma from the Train, 1987) 대니 드 비토 감독

<컴프라미싱 포지션>(Compromising Positions, 1985) 프랑크 페리 감독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 1984) 조엘 코언 감독<인 아워 워터>(In Our Water, 1982) 메그 스위츠게이블 감독

감독

<맨 인 블랙2>(Men in Black2, 2002 예정)

<빅 트러블>(Big Trouble, 2002 예정)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 1999)

<맨 인 블랙>(Men in Black, 1997)

<겟쇼티>(Get Shorty, 1995)

<사랑게임>(For Love or Money, 1993)

<아담스 패밀리2>(Addams Family Values, 1993)<아담스 패밀리>(The Addams Family,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