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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2001-11-14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

● 장 피에르 주네 작품 <아멜리에>의 캐릭터들은 확실히 만화의 세계에서 온 듯한 인물들이다.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기분좋은 이 영화는 얼굴을 찌푸릴 줄 아는 고깃덩이 인형들과 정교하게 계산된 특수효과 사이에서 잘 재단된 프로젝트 세계를 창조한다.

<아멜리에>는 두드러지게 복고적으로 묘사된 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신비스러울 정도의 구두쇠, 숨은 예술가, 사랑스런 외톨이, 그리고 상냥한 페티시스트 등 몽마르트르의 자잘한 인물들과 영화의 사랑스런 주인공 아멜리에(오드리 토투)가 함께 사는 도시다. <아멜리에>는 만화가였던 마크 카로와 함께 만든 주네 감독의 두 전작들,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 비해 볼 때, ‘창의적인 그로테스크함’에서는 좀 떨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익살맞으며 유쾌하게 복고적이다. 아코디언이 들려주는 예스런 선율은 자갈 깔린 길거리에 울려퍼지며, 극장에선 <쥴 앤 짐>이 상영중이다.

<아멜리에>는 주네가 스튜디오를 벗어나 찍은 첫 장편이지만 그는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디지털의 힘을 빌려 길거리의 모든 차들을 치워버렸고 벽의 낙서들을 청소했으며 포스터들도 더 예쁜 것들로 바꾸어놓았다. 스크린은 아주 프랑스인다운 변덕과 아멜리에의 몸을 빈 몽마르트르의 로맨스로 가득하다. 이 눈 커다란 소녀는 키 크고 말랐으며 장난꾸러기 같은 단발머리에 만화가 박힌 투박한 신을 신었다. 언뜻 보면 수줍은 카페 웨이트리스일 뿐인 듯하지만 실은 그녀는 야심만만한 수호처녀인 것이다.

그녀 아파트에서 한 꼬마의 보물상자를 발견한 뒤, 아멜리에는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을 그 임자를 찾아내, 결국 그가 마치 우연인 듯 그 옛 보물상자를 발견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몰래, 그러나 자랑스럽게 지켜본다. 같은 기분으로, 아멜리에는 그녀 아파트 관리인 아주머니의 불행한 과거를, 오래 전 실종된 그녀 남편으로부터 편지가 온 듯 가장하여 화려하게 재구성해 준다(언제나 그녀가 이렇게 상냥하기만 한 건 아니다. 동네 채소가게 아저씨가 좀 모자란 종업원을 학대하는 것을 보자 아멜리에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그의 집으로 잠입해 온갖 악동짓을 다한다).

기본적으로 성(性)에 스스로는 별 관심없어보이는 아멜리에는, 신경증 심한 카페 동료의 황홀한 오르가슴을 도모해주는 데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그녀의 상상력은 때로 어린애같이 유치하기도 하다. 아멜리에가 있는 곳에서는 가구들마저 생명을 얻으며 티비에 방영되는 옛소련영화들은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를 한다. 어떠한 경계도 곧장 무장해제시키는 천진한 웃음의 이 인형 같은 소녀는 그러나 자신의 운명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차츰 지치고 피로해진다. 영화는 아멜리에가 자동사진촬영소 앞에서, 섬세한 포르노숍 직원(마티외 카소비츠 감독. 자기 영화에서보다 여기선 훨씬 더 상냥한 캐릭터다)이 잃어버린 사진수집 책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플롯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파리’라는 유원지를 오가는 정신없고 코믹한 추적 소동을 만들어낸다.

기본적으로 뉴웨이브적인 장난꾸러기인 척하는 <아멜리에>는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 본 적 있는 장난스런 ‘딴짓하기’(내러티브적으로 옆길로 새기)와 루이 말의 <Zazie Dans le Metro>(60년대 초기의 아트하우스풍 영화로, 지금 와서 리메이크 한번 함직한 작품이다)의 지루하고 장황한 시각개그를 기술적 완성도 높게 리믹스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내에서 놀랍고 황홀할 정도의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 자부심마저 대단한 <아멜리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논쟁거리 역시 제공했다. 좌파적인 신문 <리베라시옹>은 이 새로운 ‘민족의 보물’을 엉터리 말도 안 되는 포퓰리즘으로 고발했다. 디지털을 이용해 확장되고 매만져진 영화 속의 파리는 르 펜의 인종차별주의적인 국민전선에 대한 연화제일 뿐 아니라 유로디즈니의 거짓된 마법을 몽마르트르로 옮겨왔을 뿐인, 이른바 ‘세계화’의 바보 같은 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이미 확실히 기쁘게 만든 영화에 대한 이런 공격은 그 어떤 정치인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너도나도 이 영화에 대한 발언을 일삼았다. <아멜리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엘리제궁에서 특별상영회를 열었다)으로부터 리오넬 조스팽 총리, 그리고 공산주의자인 파리 부시장에 이르기까지(그는 영화의 반자본주의적인 관점을 높이 사며 옹호했다) 모두로부터 큰 관심과 추천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아멜리에> 상영전선에 더 위험이 많다. 잘 생각해보라. 이 영화의 미국 내 배급사가 지난해 <초콜렛>을 오스카로 밀어붙이기 위해 에이브러햄 폭스먼과 제시 잭슨 목사를 선전용으로 사용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프랑스 정치인들의 애국적인 멘트로 가득한 이 영화가 미국에서 잘 팔리게 하려면 미라맥스는 얼마나 또 애를 써야 할지.(<빌리지 보이스> 2001.11.6.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