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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에 갇힌 <탈출기>
2001-11-19

이적표현물 이유로 부산영화제 일반상영 금지, 정부 비판 목소리도 높아

냉랭해진 남북관계의 여파였을까.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들었던 <탈출기>의 일반상영이 끝내 무산됐다. 영화제 조직위는 상영 하루 전인 지난 11월14일 “이적표현물인 <탈출기>의 국내 상영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대검찰청의 통고를 받았으며, 이에 일반상영을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탈출기>는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체류하던 1984년 제작한 영화로, 최서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제쪽은 일반상영 대신 11월15일 언론과 게스트를 상대로 한 차례 제한상영을 치렀다.

이번 일로 인해 가장 아쉬움을 표하는 이는 아무래도 제작 당사자인 신상옥, 최은희 부부다. <탈출기> 제한상영 직후 최은희씨는 “(국내에도 출판된) 최서해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인데, 정부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탈출기>에 대한 애정을 노출했던 신상옥 감독 역시 “예상은 했었지만…”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출기>는 지난 99년 서울고법이 <꽃파는 처녀> 등 북한에서 제작된 영상물의 이적성 유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대남선전용으로 제작했다”며 이적표현물 판정을 한 바 있다. 애초 영화제쪽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대검으로부터 11월9일 통보를 받은 뒤, 당국과 협의를 벌였으나 무위로 끝났다.

영화제가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탈출기>의 일반상영 무산을 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다. 조광희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조항이 적용되려면 그 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부산영화제에 그러한 목적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영화평론가인 김소희씨도 “법적 판례는 시대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정부의 조치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탈출기>가 관객을 만나지 못한 것을 기점으로 영화계는 또 한번 ‘창작·표현의 자유’를 외칠 것으로 보인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