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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스토리] 그 슬로건, 동의할만 한가?

‘see the unseen’‘Beyond Card’ 등 멋진 말 찾기 속에 돌아보아야 할 것들

최근 몇개 브랜드가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다. SK브로드밴드는 이라 하고, BC카드는 ‘Beyond Card’를 선언했다. 삼성카드는 ‘생각의 프리미엄’을 말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겠다, 기존 카드를 뛰어넘겠다, 새로운 생각의 프리미엄을 돌려드리겠다고 장담한다. 세상의 어떤 슬로건도 틀리거나 나쁜 말은 없다. 슬로건만 들여다보면 멋진 말 찾기 경연장 같다. 영문 슬로건을 쓸 때는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영단어로 참 잘도 조합을 한다(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이해하려면 그 이상 수준의 단어는 암호다).

하지만 말이 멋있다고 좋은 슬로건은 아니다. 좋은 슬로건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BMW의 ‘ultimate driving machine’은 광고계에서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히는데, 브랜드가 지향하는 차별적 가치(궁극의 드라이빙을 위한 첨단 기술)를 명쾌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슬로건이 여러 마케팅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1975년부터 현재까지 한번도 바꾸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슬로건은 경영자들이 교체될 때 함께 바뀌고 그래서 평균 2년6개월의 수명을 가진다고 한다. 슬로건도 마케팅의 수단이므로 필요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만 슬로건은 개별 광고의 카피와는 다르다. 브랜드 전체를 설명하며 좌우하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위급할 때 집합 신호로 외치는 소리(sluagh-ghairm)를 슬로건으로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광고로 치면 상황이 위급할 때가 아니라 수많은 ‘말’들 속에서 쉽게 잘 들리도록 외치는 소리가 돼야 한다. 슬로건은 그 유래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침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슬로건은 없다. APPLE의 슬로건 ‘Think different’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흔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APPLE은 그 슬로건을 중심으로 직원 모두가 움직였고 그 결과 정말 다른 실체들을 보여줌으로써 흔한 말을 자신의 고유한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SK브로드밴드, BC카드, 삼성카드 모두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담아 슬로건을 런칭했다. 흥미롭게도 SK브랜드밴드와 BC카드는 모두 밴드 음악과 팝아트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두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새로운’ 세상을 표현하기에 젊은 세대의 음악, 전형을 뛰어넘은 팝아트가 적합했을 것이다. 들리는 음악처럼 새롭고, 보이는 그림처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단다. SK브로드밴드는 후속광고에서 ‘컨버전스의 새로운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세계 여러나라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힙합춤을 추는 광고를 내보냈다. 전에 보지 못한 춤이다. 광고는 브랜드가 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 자체가 ‘see the unseen’ 해야 하고 ‘beyond card’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 두편의 광고는 모두 매력적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대를 끌어올렸다면, 이제 그에 합당한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슬로건은 말의 향연이 아니라 실체의 응축이어야 한다. SK브로드밴드에서 하나로텔레콤 때와 똑같은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았다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라는 이야기니까. ‘말이 얼마나 강력한가’가 아니라 ‘동의할 만한가’가 슬로건의 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기업의 슬로건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최고 경영자의 생각이다. 광고대행사에 ‘말 맛나는’ 슬로건을 요구하기 전에, 그 광고를 원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