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끝없는 사막을 혼자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잡힐 듯해 다가서면 이내 저만치 날아가버리는 허망함. 그 허망함을 오늘도 끌어안고서 확답없는 길을 걷고 있다. 짙은 어둠 속을, 뿌연 안개 속을 그렇게 하루하루 걷는다.
명절 때마다 동일한 단어와 말들만이 오가는 듯한 어른들과의 대화들. 영화는 힘든 것이고, 나의 장래는 불투명한 것이고, 돈이란 것은 중요한 것이고…. 세상에서 영화라는 꿈을 쫓아 살아가는 이들은 아마도 피차일반, 이심전심으로 내 맘을 알고 이해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형제가 함께 감독을 하는 이들은 참으로 대단스럽다. <파고>의 코언 형제,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의 패럴리 형제 등. 사실 감독 자신보다 그들의 주변부 인물들, 특히 부모들의 맘이 힘들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하는 모든 어려움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쉼없이 받고 있는 압박감 가득한 상황만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전에 어떤 감독님께서 영화 촬영 전에 고사를 지내는 것은 감독이 촬영 전에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 20명 혹은 그 이상의 스탭들이 감독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 그건 <트윈 픽스>를 구간반복으로 끊임없이 보는 느낌이 들 만큼 섬뜩한 일이다. 거기다 영화 현장에선 인간의 논리와 계산으로는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뻔뻔스레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라 좀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영화를 제자리에 갖다놓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사정이 비견 우리네 사정만이겠는가? 며칠 전 항공기가 또다시 떨어져서 이제는 더이상 못 가볼지도 모를 땅, 아메리카. 그곳의 독립영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망각의 삶>은 그래서 결코 남 이야기 같지 않은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등을 촬영했던 촬영감독 톰 디칠로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아 몸소 체험했을 법한 현장의 일화들을 마치 <CNN> 뉴스를 보듯 생생하게 전해주니 말이다.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독특한 구성과 짜임새인데 컬러와 흑백을 넘나들면서 마치 악몽을 계속적으로 꾸는 듯한 구조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갈등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배우의 계속되는 제안에 흔들리는 감독, 여배우와 여자스탭들간의 갈등, 붐마이크는 자꾸 화면 안으로 들어오고, 계속되는 NG에 감독은 지쳐만 가고, 영화는 좀체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이전의 악몽 같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워놓았던 발전차가 더위에 불이 났던 기억. 갑자기 잘 나오던 모니터 화면이 촬영시작과 함께 먹통이 되고, 연달아 조명기 램프까지 터져버린 그 아찔한 기억들. 그땐 정말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을지, 이제까지 들어간 돈은 어떻게 하나 등등 무수한 걱정의 물음표들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어쨌든 영화는 완성됐고, 다시 몇년간은 영화를 못 찍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채 1년도 안 되어서 난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새 악몽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새로운 환상을 가지고서 말이다. <지우개 따먹기>를 끝내고 스탭들에게 단연코 다시는 아이들 영화 안 찍는다고 했는데 <외계의 제19호 계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망각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이런 악몽과 악재는 더이상 없다 싶다가도, 이 일을 진짜 때려친다 싶다가도, 영화가 완성되고 나면 어느새 이전의 기억은 어디로가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잡히지도 않는 뭔가를 따라 몽유병에라도 걸린 냥 헤매고 다니는 것. 그래도 이러한 삶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은 아픔은 망각하지만, 희망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룸톤을 녹음하는 장면의 스탭들의 모습. 그들의 상상 속에서 보여지는 각자의 소박하고 다양한 꿈을 보면서, 나 또한 오늘 어떤 꿈과 희망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민동현/단편영화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