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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십자가는 충분해
이영진 2009-02-13

망언 제조 모터기를 입에 달았나. 경거망동 레이스를 펼치는 장경동 목사 말이다. “미국은 스님도 천당 갑니까. 그럼 뭐하러 목사 해, 스님 하지. 아이고, 미국이 희한하다. 참 괴짜다.” LA까지 날아간 장 목사, 제 입으로 목사가 스님도 천당 간다고 얘기하는 미국은 웃기는 나라라고 했다는데, 글쎄. 스님도 천당 가고, 목사도 천당 가고, 불자도 천당 가고, 교인도 천당 가고, ‘에브리 원’ 천당 가면 ‘해피’한 것 아닌가. “스님들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그의 요상한 ‘예수천당, 불신지옥’론을 내 식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십일조 안 낼 거면 어서 빨리 이민가라!’(아멘. 정말이지 가고 싶다.)

이런 말 하면 지옥행 급행열차를 예약하고 싶어 저놈이 안달이구나 할지도 모르겠다. 교단에서조차 눈총받는 장 목사를 왜 굳이 들먹이며, 전체 기독교에 달걀을 던지느냐고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한 발언인데 그게 무슨 대수냐는 장 목사의 어이없는 주장에 일일이 대꾸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건 전투력 왕성한 분들이 잘근잘근 씹어줄 것이다. 이를테면 진중권 같은.(‘장경동 목사님, 질문이요-<씨네21> 671호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참조하시길) 다만 성(聖)의 영역을 내버리고 속(俗)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무던히도 애썼던 한국 기독교의 그릇된 궤적이 결과적으로 장 목사의 비뚤어진 발언을 낳지 않았나 의심했던 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깨달은 누군가에게 기대서 위안을 받고 싶어서다. 그들의 결핍을 충만케 하려면, 종교는 비천한 속(俗)을 달랠 특별한 성(聖)의 의식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언어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 속(俗)에서 흔히 통용되는 배설의 언어를 끌어들이는 건 자폭행위나 다름없다. 성(聖)의 언어는 배설이 아니라 되새김이어야 한다. 종교에서 침묵은 그래서 중하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개척(신규시장 확보?) 그만하고, 부흥(자본축적?) 그만해야 한다. 사방이 십자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은 종교로서의 질적 퀄리티를 재고할 때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위협적인 말걸기 만으로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하다.

P.S. 나이 먹어서 그런지 가끔 종교 하나 갖고 싶기도 하다. 증거를 강요하는 대신 침묵이 존중받는 위안처라면 교회라도 꺼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