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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티플레저] 인생 한 방, 그냥 즐겨~
2009-02-20

김어준의 ’양아치’

어느 쪽이냐 하면, 난, 양아가 좋다. 조폭들이 이권 위해 나와바리 전쟁하는 사이 담뱃값 위해 골목길 삥을 뜯는 좆밥, <피도 눈물도 없이> 류승범의 언투와 <파이란> 최민식의 궁상과 ‘새됐어’ 싸이의 몰골을 모핑 렌더링하면 완성되는 종자, 걔네들 말이다. 왜냐.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띠고 태어난 거라며 내 출생목적까지 일방 지정해주시는 국가 앞에서 ‘공익과 질서’ 지키고 ‘책임과 의무’ 다하며 ‘근면한 국민’되겠다 선언해야 했던 조신한 민간인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우연히 태어나 스스로의 행복 위해, 그냥, 살아버린다. 조국건설 사명 따위, 안 띠고 태어난 게다. 상명하복의 집단규범 대신 제 욕망을 존재엔진 삼은 그들이 조폭이 못 되는 건 폭력 못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못해서인 게라. 조직을 제 자존의 근거와 제 정체성의 코어 삼는 조폭보다 그렇게 철저히 개인으로 남는 양아가, 근대적 자아에 훨, 가깝다. 그만하면 제 인생, 온전한 주인.

찌질한 후루꾸는 칠지언정 비린내 나는 가식은 떨지 않고 같잖은 허세는 부릴지언정 토 나오는 위선은 없이 그렇게 가소롭게 불량한 채 품위 대신 후까시로 사는 그들은, 욕망 앞에 야로없는, 비루한 삶의 독립군. 그 양아에 지성만 더하면 이제 한량이 되는 게고. 그런 전차로 소데나시 정장으로 착용하는 남루한 쌈마이, 그들이 난 좋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인 제 욕망과 그 정도만 솔직히 대면할 수 있어도,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온갖 정신분열의 절반은 사라질 게다.

그리 믿는 내게, 길티플레저는 부당한 형용모순이다. 갈비보다 갈치가 맛있는 게 죄가 될 수 없듯 그렇게 취향은 그저 제 욕망의 입맛일 뿐이건만 범죄행위 아닌 다음에야 어찌 취향이 죄의식의 소재가 된단 말인가. 추리닝에 금목걸이 촌빨이 호불호의 대상은 될지언정 시비의 영역이 될 순 없는 법 아닌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함은 그저 자신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드러내는 자기고백일 뿐, 그 자체로 죄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혹여 생겨먹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꼬라지가 스스로 죄스럽게 여겨진다면, 어디 장기요양이나 전문상담을 받을 일인 게고.

그러니 오히려 나로선 취향이 죄일 수 있다는 사꾸라 인식을 대량 유포하여 그러잖아도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우리네 도덕관과 죄의식을 한층 더 뒤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씨네21>에, 엄중 경고하고자 하는 바이다. 동시에 정치부터 섹스까지 그 어떤 플레저도, 남의 그것을 제한하지 않는 한 길티하다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이 한몸, 가열찬 총폭탄이 되어 주장하는 바이고. 이상, 우씨.

PS. 청탁받고 암만 생각해도 죄의식 동반하는 취미 따위는 없는지라 이게 대체 내 취향의 얄팍함 덕인지 아니면 내 죄의식의 두께가 그러한 건지 헷갈려하다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나한테 유리할 건 없겠다 싶어, 뜬금없이 새로운 논거 급조한 것이 방금 주장 되시겠다. 설혹 내가 고상하기까지 하다 한들 그게 죄일쏘냐, 씨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수백만 ‘딴지 폐인’을 양산한 뒤 최근에는 ’야메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겨레> ESC '그까이꺼 아나토미’ 등 여러 매체에 연재한 상담을 묶은 <건투를 빈다>가 있다. 전방위 촌철살인으로 21세기 명랑사회 구현에 지대하게 공헌했다 주장하는 자칭 본능주의자.

김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