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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들, 세상 끝에서 돌아오다
2001-11-23

저예산 디지털영화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1)

1999년 단편 <소풍>의 칸영화제 수상이 젊은 감독 송일곤을 일찍부터 주목할 대상으로 점찍게 만들었지만 장편데뷔작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아주 쉽게 데뷔할 수 있는 환경을 그는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년여 매달리던 <>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뒤로 하고 그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꽃섬>이 보여주는 송일곤 감독의 엄격하고 견고한 미학이 치열한 고민과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면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감독이 남긴 이 기록은 그 과정을 짐작게 하는 또다른 증거이며 슬픔과 불행을 잊게 해준다는 미지의 공간, 꽃섬으로 가는 길잡이다. 편집자주

시나리오 쓰기- 떠도는 이미지를 따라(2001. 10.)

예전부터 로드무비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것은 단편 <플러쉬>로부터 배운 디지털카메라의 매혹적인 부분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몇개의 큰 이미지들을 따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 여자가 눈이 오는 침묵의 깊은 산 속을 말없이 걷고 있는 이미지였다. 눈이 너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으로부터 세 여자가 걸어오는데 깊이 쌓인 눈 때문에 걷기가 쉽지 않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과거의 ‘어떤 것’들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다.과거의 ‘어떤 것’은 그들에게 상처였고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은 내가 예전에 머문 적이 있던 꽃섬이었다. 그들의 상처에 관한 생각들을 했다. 세 여자의 로드무비, 어린 여자아이는 <플러쉬>에서 보여주었던 십대의 사산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였고 두 번째는 음악을 하는 여성, 그리고 세 번째 삼십대 여성은 딸이 있는 평범한 주부이길 원했다. 이 세 여성은 모두 하나의 인물인데 성장으로 하며 겪을 수 있는 다른 삶의 형태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들이 겪는 상처들은 극단적인 상황들이었는데 그 상처들은 영화적 대표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지긋한 일상과 현실적인 묘사가 지배적인 우리의 강박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판타지와 비현실적인 현상들, 우연이란 단어는 어떤 힘에 의해 이끌리는 우리가 그 힘을 이해하지 못할 때 말하는 단어이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우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이루는 혼돈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런 알 수 없는 우연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다른 중요한 점은 남성인 내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 이유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근대의 권력과 역사의 외형적 측면은 남성성이 유독 지배를 많이 해왔었다. 그러나 문화와 정신을 이루며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머니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과 역사의 반대편에서 그 어머니성은 나의 정신적인 희망과 고결함을 잃게 하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는, 감싸안으며 묵묵히 인간의 존재를 보호해주던 어머니의 사랑 말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대립구조보다는 그저 하나의 인간에 대한 묘사가 나에겐 중요했다. 그저 하나의 인간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이미지들을 부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단 <꽃섬>의 초고를 쓰는 데 단 삼일이 걸렸다(이전에 장편데뷔작으로 준비했던 <>의 시나리오는 2년이 넘었는데도 완성을 못하고 있었지만). 대략의 관습적인 뼈대만을 완성한 것이다. 난 이 로드무비는 배우들과 함께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자질의 배우를 캐스팅한 뒤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과 표정들 아픔과 치유의 과정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디지털카메라로 찍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때론 시나리오가 영화의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주춧돌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책상에서 만들어놓은 세계가 막상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졌을 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난 리서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란 뼈대일 뿐이지 살아 움직이는 완성된 유기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가능성이 있는 배우 혹은 좋은 배우들과 함께 일한다면 그들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그들의 삶에서 오는 감정의 경험들을 끌어내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삼일 만에 완성한 초고는 꽃섬을 찾아 헤매는 세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동화 혹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였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어린 왕자>와 같은 형식의 영화. 그러나 이 관념의 동화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극사실적인 현실의 묘사가 설득력을 갖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초고는 서툴렀고 상투적이었으며 캐릭터는 거칠고 재미가 없었다. 불안감을 갖고 있었지만 배우를 캐스팅한 뒤 완성시키리라는 희망으로 프로듀서에게 보여주었다.

캐스팅- 우연 같은 필연(2000. 11)

예상 외로 쉽게 투자자가 결정되었다. 투자를 한 SRE 엔터테인먼트가 저예산 디지털영화라는 점과 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빠른 결정에 감사했고 난 가장 먼저, 캐스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의 사례는 스타급의 연기자가 적은 출연료로 저예산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인지 감히 3억, 4억원 예산의 영화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꽃섬>을 저예산으로 찍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작가의 영화적 자유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이윤의 원칙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타를 쓰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명도 있는 배우는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지만 만약 이 세명의 역할에 스타를 썼다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이었지만 30대 옥남의 역을 맡게 된 서주희씨를 대학로에서 만났을 때 난 꼭 한번 그녀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여성에 관한 어떤 영화를 정확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주희씨는 특이한 분위기의 사람이었고 아이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고집이 세지만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지배했었는데 그녀가 연기한 <레이디 멕베드>에선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옥남이라는 캐릭터는 멕베드를 비극으로 몰고가는 욕망으로 점철된 여인과는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서주희씨에겐 때론 백치와 같은 순수한 에너지가 강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서주희씨는 파리에서 연수중이었기 때문에 투자가 결정될 즈음 가장 먼저 연락을 했고 시나리오를 보냈다. 서주희씨가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전화를 주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었는데 몇 가지 질문이 있다는 말을 했다. 일관성 없는 캐릭터의 변화에 관한 질문 끝에 그녀는 자신의 감상과 자기가 파리에서 요즘 알고 지내는 임옥남이라는 여성에 관한 언급을 덧붙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임옥남이라는 여성의 과거의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현재의 존재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영화작업의 첫 시작이었다. 일은 시작되었고 주희씨는 한달 뒤, 그러니까 촬영 한달 전에 귀국했다. 주희씨에게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보낸 뒤 바로,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뮤지컬 <드라큘라>의 주인공인 임유진씨를 찾았다.

왜냐하면 20대 여성인 임유진 역에 실제로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고, 가수로서 음악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과 그녀의 현실적인 상처에 관해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유진 역시 적극적으로 이 영화에 애정을 표현했다. 임유진씨는 영화나 연극의 경험이 없었고,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외형적인 연기톤이 내가 지향하는 영화연기와는 다른 것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맑은 영혼을 갖고 있다는 직관, 그리고 상처를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에 그녀를 캐스팅했다.

마지막 주인공인 10대 소녀 김혜나 역으로는 새로운 얼굴을 찾기로 하고 우리는 추천받은 신인 배우를 오디션했다. 너무 어린 나이의 배우지망생들 그러니까 실제 나이인 16, 17살의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연기에 관한 집중력이 없었고 사유하는 친구를 만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을 찾기로 하고 한 여배우를 만났는데, 그녀는 유연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눈이 맑았고, 이야기할 때 매력적인 면이 많았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너무나 여성스러워서 20대의 임유진과 차별성을 두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능성을 가지고 캐스팅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에게 전화하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했는데, 연출부였던 친구가 강력하게 한명의 배우를 추천했다. 한 가닥 가능성으로 밤 열두시에 조감독과 포장마차에서 만난 사람이 김혜나였다.

그녀는 연극원 학생이었고 내가 예전에 무용공연 뒤풀이에서 멀리서 유심히 지켜보던 친구였다. 난 그녀의 눈과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시해서 이야기했고, 그날 마음을 바꾸어 김혜나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다. 왠지 모르지만 직관을 따라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만남으로 어쨌든 혜나는 가고자 했던 길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일년 동안의 삶의 행보가 바뀌었고 바로 그 전날까지 캐스팅하기로 다짐했던 신인배우와의 운명 역시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운명의 힘들에 관한 영화였기 때문에 난 이 보이지 않는 삶의 비밀스러운 질서에 관한 기대감과 미묘한 흥분의 마음으로 캐스팅을 끝냈다. 운명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의 길을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이해불가능한 우리의 생의 이면에 관한 비밀이다.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그리고 과학자들, 심지어 생물학자들이 풀고 싶어했고 지금도 그 답을 찾고 있는 이 전 우주의 법칙들이었다. 나 역시 미미한 사유의 소유자로서 그 질문들의 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방법은 길을 떠나는 것밖엔, 영화를 만드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1)

▶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