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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들, 세상 끝에서 돌아오다
2001-11-23

저예산 디지털영화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2)

리허설을 동반한 헌팅-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2000. 11.12) 혜나와 유진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고등학교 1학년인 영화 찍는 소녀 유소라와 함께 남해를 거쳐 3박4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유소라는 중학교 때 이미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라는 단편을 만들었던 소녀였다. 내가 생각한 혜나와는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녀는 혼자서 카메라에 일기를 쓰는 재미있는 삶을 사는 친구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카메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소라의 행동들을 가지고 왔으면 했다. 내가 자랐던 것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기적에 관한 상상을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 있는 마법의 카메라가 있다면…. 예를 들자면 귀신이나 슬픔이나 사랑이나 기쁨이나 거짓말이나 하는 것들이 어떤 형체로서 카메라에 담긴다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비밀에 대한 해답들을 찾는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유소라와 동행했다.

감수성 예민한 16살 소녀였고 셀프카메라를 찍으며 살아가는 친구였다. 우리는 밤기차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이 첫 여행이 영화촬영의 시작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 역시 카메라를 가지고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정중에 나는 그들의 작은 버릇이나 말하는 방법을 지켜보며 그들의 현재의 생각, 과거의 기억들과 미래의 꿈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유진이는 남들보다 빠르게 이야기하고, 두 손을 크게 벌리면서 이야기한다든지, 혜나는 혼자 있을 때 입을 오므리거나 여간해서는 감정의 변화가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든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로 연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한달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많이 그들에 대해 아는 것밖엔 없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덩어리뿐인 캐릭터를 조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만남을 통해서 많은 장면들이 시나리오와 영화에 추가되었고 삭제되었다. 이 여행에서 우리가 로케이션 헌팅을 함께 했기 때문에 제작 실장과는 다른 섬들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꽃섬으로 갔다. 난 8년 전쯤 꽃섬에 두달가량 머문 적이 있었다. 정신적 방황의 시기였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던 때였다. 그때 날 붙잡아주셨던 전도사님은 그곳에서 5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우물을 만들고 교회를 건축하고 계셨는데, 나는 일을 잠시 돕기 위해서 그곳에 갔었다.

난 낮엔 노동을 했고 일이 끝난 오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섬에선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그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서 작은 섬을 ‘죠’라는 이름의 사냥개와 함께 산책했는데 섬 뒤편은 끝없는 바다였다. 난 큰 바위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전도사님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거대한 바다를 보며 주위엔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피우면 정말 담배가 맛있었다.하루에 한번 4시에 배가 여수에서 사람들과 먹을 것 그리고 짐을 싣고 들어왔다. 그때 가끔씩 편지가 섞여 왔는데, 그 시간이면 멀리서 섬으로 다가오는 배를 섬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보는 것도 좋았다. 지금의 기억 속에서 그 시간들은 쓸쓸함이지만 당시의 내겐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난 8년 전 그 기억을 떠올리며 배우들과 함께 약간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배를 탔다. 우리는 꽃섬을 오랫동안 산책했고 내가 예전에 걷곤 하던 길을 배우들과 함께 걸었다. 따뜻한 오후의 석양이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폐교엘 갔었고 난 그 폐교에 들어서며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시나리오의 마지막 부분들을 그곳에서 결정했다. 흔적만이 남은 과거의 것들. 폐교의 잡초 무성한 운동장, 앉을 사람이 없는 작은 의자, 버려진 철제 책상. 윤기없는 마룻바닥. 못질이 된 창틀. 멀리서 구슬프게 들리는 파도소리. 죽어가는 것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것들… 을 보며 많은 영감을 떠올렸다. 우리는 처음 꽃섬에 도착해 많은 곳을 걸으며 별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것들을 그 여정에서 아주 많이 결정하고 상상했다. 그리고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영화에 남았다. 우리는 마지막날 꽃섬에서 작고 작은 민가에서 밤바다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녀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오랜만의 여행에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를 탔고 섬에 왔다고 했다. 바다가 주는 근원의 힘. 어머니의 힘. 최초의 힘. 왜 우리는 바다로 가서 안식을 부탁하려는 걸까? 정말이지 바다는 그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뚜렷이 기억난다. 불과 일년 전 세명의 여인들과 작은 쪽배를 타고 파도를 가르며 꽃섬으로 향할 때 아이처럼 소리지르며 즐거워하던 그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던 긴장된 기분이…. 촬영-진실의 순간 붙잡기(2000. 12.31∼2001. 3.8)

촬영은 무척 힘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콘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우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인물을 형성하는 시기가 한달이 있었는데도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각각의 배우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기의 스타일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 배우는 한 장면의 시작부터 끝가지 다 연기해야 했고, 촬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아야 했다. 진실의 순간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혼자서 연기하는 것과 다른 배경의 인물이 함께 연기하는 것 역시 톤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자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율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반복촬영을 했다. 어떤 장면들은 훌륭했고, 너무나 쉽고 재미있었고, 즉흥적인 장면도 있었지만 어떤 장면은 우리의 방법이 오히려 더 인위적으로 보였다. 결국 편집에서 잘린 것들은 연기의 톤이 맞지 않아 그 신의 구성력이 떨어진 것들이었다.

콘티없이 하나의 장면에서 배우가 흐트러짐이 없는 호흡으로 그곳에 있고 혹은 연기하고, 카메라는 그들을 관찰하는 방법, 그리고 세트없이 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시도 등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우리에겐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욕망 그리고 기존의 문법을 전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관객은 무엇을 느낄지, 영화가 끝나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무의식 속으로 집어넣을지 궁금하다. 하나의 기억이 있다.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었고 촬영을 하던 정선의 가리왕산은 입산통제구역이었고 눈은 허벅지까지 쌓였다.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스탭들은 그 산의 초입부터 모두 걸어서 산의 정상까지 한 시간 정도 짐을 지고 올라야 했다.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공기는 무척 차가웠지만 그 추위로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에 서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에서 떠나 이 고요한 곳으로 숨어들어와, 밤새 내린 눈 위에 첫 번째 발자국을 찍으며 우리가 어렴풋이 꿈꾸었던 것을 향해, 스탭 모두가 말없이 한발 한발 산의 정상으로 오르던 기억. 가끔 코끝이 찡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우리가 만든 그 발자국은 눈에 의해 사라지고 또 우리는 발자국을 내고 다시 발자국은 눈에 덮여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눈이 그쳤고 우리는 촬영을 시작했다. 송일곤/ 영화감독 ▶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1)

▶ <꽃섬>이 나오기까지, 그 여정의 기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