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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시한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의 적절한 궁합 <싸이보그 그녀>
이화정 2009-05-13

synopsis 스무살 되는 생일날 지로(고이데 게이스케) 앞에 우연히 한 여자가 나타난다. 지로에겐 100% 완벽한 이상형의 그녀(아야세 하루카)는 지로의 생일을 축하하며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돌연 사라져 그를 당황케 한다. 추억에 잠긴 채 1년이 지난 어느 날, 지로 앞에 또다시 그녀가 나타난다. 그런데 1년 전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미래의 지로가 과거의 인생을 되돌리기 위해 보낸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밝힌다. 물불 안 가리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이보그 그녀와 지내면서 지로는 어느새 사이보그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엽기적인 그녀>의 마지막, 전지현이 앉아 있던 나무 밑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할아버지는 ‘미래’의 ‘견우’(차태현)다. 영화에는 이를 뒷받침할 꽤 설득력있는 장치들이 여럿 등장한다. 일단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인 전지현이 끊임없이 주인공을 미래에서 온 인물로 설정하며 언젠가 꼭 미래인을 만나겠다고 다짐하는 점, 그리고 낯선 할아버지가 견우와 그녀만 아는 편지의 내용을 모조리 알고 있다는 점, 또 한 가지 그때 하늘에 UFO가 떠간다는 점 등이다. 90년대 <비오는 날의 수채화>부터 시작된 곽재용 감독의 순애보는 최근 들어 현재를 거부한다. 대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종횡무진하는 설정을 가져옴으로써 그 사랑에 영속성을 부여하려 한다.

<싸이보그 그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점에 있어서 지금까지 곽재용 감독의 멜로 중에서도 가장 수명이 긴 사랑에 속한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얼핏 비추었던 미래남을 확장, 발전시켜 아예 ‘미래에서 온 미지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녀는 장장 100년이 넘는 시간여행을 하며 주인공 지로와 만났지만, 사실 관객에게 그녀와 지로의 사랑은 낯설지 않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이상형이라 말하며 보자마자 반하는 지로의 모습은 첫눈에 반하는 일반적인 첫사랑 공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소 낯간지럽지만, 이렇게 팬시한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의 궁합지수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영화엔 SF판타지 장르의 외형을 만족시키기 위한 비주얼적인 시도도 여럿 엿보인다. 사이보그 인간의 타임머신 여행은 기본. 스케일을 보여줄 대지진이라는 스펙터클도 가미된다. 그러나 외적인 몇몇 설정을 제외하고 보면 이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유명한 지하철 오바이트 장면이나, 남자친구를 거리낌없이 가격해 신드롬을 모았던 엽기녀의 설정은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하는 사이보그 여성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다만, <엽기적인 그녀>에서 엽기녀의 엽기적인 행각이 과거형 순애보를 현대적인 로맨틱코미디로 가다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면, <싸이보그 그녀>에선 그 약발이 덜해졌다. 그 결과 사이보그 인간과의 사랑이 가능하냐는 철학적인 질문보다 곽재용의 SF는 순애보가 제1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역시 곽재용 감독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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