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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지금 믿을 건 뭐?
강병진 2009-05-29

로또00이란 사이트가 있다. 당첨확률이 높은 번호조합을 알려주는 곳이다. 여기서 배출해낸 1등만 15번이란다. 소문을 듣고 혹했다. 그런데 유료다. 한달에 9900원, 4개월에 3만3천원. 그래도 가입한 사람들은 많아 보였다. 사이트에는 운영진이 당첨자를 인터뷰한 내용도 올라와 있었다. “1등 당첨 비법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물으니 당첨자는 “제가 로또00에 가입을 하고 나서 크게 욕심 안 부리고 매주 1만5천원씩 구매를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로또00에서 뽑아주는 번호를 믿고서 계속 구매를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과연 이 사이트에서는 어떤 마술을 부리는 걸까. 광고문구에는 ‘유동회귀법을 통해 최적의 예상번호군 선정, 과학적 압축필터링’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으로 특허까지 받았단다. 대략의 분석방식은 다음과 같다. 6개의 숫자의 합계는 얼마인가. 홀수와 짝수, 높은 수와 낮은 수는 몇 대 몇의 비율로 분포되어 있는가. 그리고 번호마다 끝수의 분포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까지 당첨된 번호들로 각 항목에 따른 데이터를 만든 뒤 가장 높은 분포도에 따라 번호를 조합하는 것이다.

정녕 이런 방식이 효험이 있는 걸까. 현란한 용어와 전문가다운 방식 설명을 지워보면 어딘가 손쉬운 상술이 보인다. 정말 이 분석방식이 뛰어난 걸 입증하려면 이 사이트에서는 매주 1개의 조합만 내놓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50개의 조합을 내놓고 지금까지 15번의 1등을 배출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노벨상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매주 내놓는 조합은 회원당 최소 10개다. 335회 로또추첨에서 5등 당첨조합만 7만359개를 만들었다고 하니, 아예 당첨되지 않은 조합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다. 말하자면 로또판매점에 가서 “자동이요”라고 하는 것과 여기서 번호를 받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로또00 사이트는 성황이다. 물론 이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들도 로또00의 봉이 김선달적인 상술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한달에 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로또에 대한 열망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매주 5천원식 로또를 사던 나도 미친 척하고 한달짜리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니, 미친 척한 게 아니라 미친 거다. 지금은 정말이지 믿을 건 로또밖에 없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