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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삶의 먹
정재혁 2009-06-12

엊그제. 잠을 자려는데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의 일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로 “혁아, 네 아빠 갔어”라고 했다. 엄마의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멍했다. 꽤 오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10여분 정도. 슬픈 건지 아픈 건지 기억도 안 난다. 이후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아빠가 생각날 때면 이 상태가 된다. 슬픈지, 아픈지 모르겠다. 그저 멍하다. 아무런 감정도, 감각도 없다. 그저 죽음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무서웠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어 있었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갔더니 아는 누나가 흘러가는 말로 “노무현 자살” 어쩌고 그랬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제는 배우 여운계가 세상을 떠났고, 지난주 일요일엔 전화로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가 별세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일주일 안에 죽음이 네번이나 지나갔다. 그냥 잘 모르겠다. 이 말밖에 안 나왔다. 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만족한 적이 거의 없다. 동시에 실망한 적도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나라판인 이 나라에서 그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 생각했다. 여운계는 그저 연륜 많은 배우였다. <대장금>에서의 연기는 훌륭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인자하다 생각했다. 개인적인 기억은 없다. 정승혜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인품에 대해선 자주 전해 들었지만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또 멍했다. 자꾸만 세상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무슨 우연인가 싶지만 그저 막막했다. 무서웠다.

어릴 땐 죽음은 슬픔이라 생각했다. 망상과 공상을 헤매다 혹시라도 부모를 잃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저 ‘안돼’라고 소리쳤다. 조금 나이를 먹고는 TV와 스크린 속 눈물의 판타지가 죽음을 대신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혹은 요즘. 그게 삶의 먹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았던 구석 어느 곳의 시커먼 자리가 자꾸 마음을 누르는 기분이다. <극장전>의 마지막 장면도 계속 떠오른다. 김상경은 병원에 누워 있는 선배를 보고 겁이라도 먹은 듯 돌아서 나와 길을 걸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잊어야 하는 거, 혹은 피해야 하는 거, 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봐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정체없는 그 무언가의 조각을 무심코 던진다. 그리고 사람은 이에 다친다. 죽음을 알고 세상을 조금씩 잊는 걸까. 겁을 추스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승혜 대표, 배우 여운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