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영화를 완성할 때까지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언젠가 남동생이 내가 산 신발의 디자인을 보고 단순, 무식, 과격하다고 했던 것처럼, 그렇게 시작하고 완성된 영화였다. 그저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쌓인 상처의 깊이가 안타깝고, 그들이 나에게 주는 상처가 아파서, 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고, 잠시라도 눈감으면 휘말리기 쉬운 체계적이고 피상적인 주류의 논리로부터 벗어나려고 무식하도록 일상적으로 접근했고, 그들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자신감을 강제하며 과격하리만치 솔직하게 기록했다. 이런 영화가 일반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그렇듯이 한정되어 있었고, 여러 사람들 덕분에 그런 기회를 얻게 된 지금은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올까 하는 걱정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설렘을 가져보기도 한다.
처음 영화를 하려고 결심했을 때,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 적어도 다양한 사고방식에 대한 외면과 거부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고추말리기>는 그것을 나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족이라는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모르고 있던 할머니와 엄마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 완성하고 나서도 보여드리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 하나의 단계가 늦어지면서 아직도 영화를 끝내지 못한 느낌 속에 있었다. 결국 개봉을 핑계삼아 드디어 할머니에게 보여드린다. 엄마의 말투나 눈빛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자기 삶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할머니의 울먹임 속에서 이제서야 이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갑자기 화목한 가정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두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지는 않았을까? 나도 변화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이런 영화를 찍겠다고 시작했던 스스로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그 내용의 방대함에 멍해졌던 적도 있었다. 개인의 감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결국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전하고 싶다는, 용기없고 매정한 딸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애정과 이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없었던 내 모습을 깨달으며 그들의 삶에 대한 나의 존경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영화라는 것과 삶이라는 것은 같지 않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것도 아니다. <고추말리기>를 만드는 것은 그저 일상 속에서 하지 못하는 그러나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들을 그저 영화라는, 내가 할 수 있는 매체로 풀어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을 관객이 열린 마음으로 봐준다면, 우리 셋의 삶의 부분을 고스란히 담은 이 영화가 그들의 삶으로 다시 전환될 수 있다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내 처음의 믿음, 비록 미미할지라도 영화가 살아간다는 것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순진해 보이는 믿음이 조금이나마 실현되지 않을까?
장희선/ 영화감독·영화제작소 청년 대표·<고추말리기> 등 연출</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