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픈칼럼
[오픈칼럼] 21세기 새마을운동
이화정 2009-07-03

주말에 어린이대공원엘 갔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입장료도 무료가 된 지 오래니 말도 안되는 멋진 정원을 공짜로 가진 셈이다. 게다가 코끼리도 사자도 돌고래도 상주하는 제대로 스케일 큰 공원이다. 그런데 최근 공원에 일대 개혁이 일어났다. 이른바 모던화의 바람이 변두리 지역까지 침투한 결과다. 낡은 화장실은 비데까지 갖추며 초현대화됐고, 한갓진 음악당은 대형 공연도 가능할 최신식 공연장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분수대가 없어졌다. 하얀 석고상으로 만든,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법한 풍만한 나신의 여인이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오래된 분수대가 없어졌다. 대신 관현악에 맞춰 레이저물쇼가 펼쳐지는 모던한 분수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간대별로 현란한 춤사위를 뿜어대는 신식 분수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공원의 새 명물이 됐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주민인 나는 영 찜찜했다. 잔뜩 화가 나서 욕설도 퍼부었다. ‘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 아름다운 건지 판단 기준을 상실한 사람들의 처사’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해마다 봄가을 소풍, 사생대회, 어린이날을 공원과 함께하며 분수를 배경으로, 마치 <스모크>의 하비 카이틀처럼 기념사진을 찍은 나에게 철거된 분수는 그저 낡은 무엇이 아닌 어떤 가치를 상징했다. 새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돼서 찾게 되는 편안함, 그 속에 이곳만을 특징짓는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 어디에도 그런 보존의 미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벌이는 개발에 대한 종용은 섬뜩할 정도로 빠르고 파괴적이다. 오래된 건 바삐 부수고 새것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 그리고 그게 아름답고 멋지다라는 가치판단. 그 모든 사고가 내 고향 서울을 흉물스럽게 바꾸고 있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한 독일인 영화 관계자는 “이상하죠. 서울엔 ‘녹청’(patina)이 없어요. 오래된 집에 있는 녹들, 생활하면서 생긴 흔적들 말이에요. 내 고향 사람들은 그런 걸 없애는 데 아주 민감한데 말이에요.” 때를 벗겨내고 모던화해서 도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지. 그 촌스러운 새마을식 사고방식에 넌덜머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