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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난 아직 늙지 않았어
김도훈 2009-08-14

고양이의 선조는 북아프리카에서 왔다. 그들은 따뜻한 모래 위에 오줌과 똥을 싼 뒤 다시 모래로 덮어 냄새를 없앴다. 천적이 체취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습관은 수천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의 고양이들에게도 남아 있다. 애완동물 용품 회사들은 고양이의 습관을 이용한 배변도구들을 제조한다. 모래가 튀지 않도록 이글루처럼 만든 플라스틱 화장실, 고양이가 배변을 하는 순간 딱딱하게 굳는 모래, 배설물을 떠내는 주걱. 이런 배변도구만 갖추면 고양이는 알아서 똥오줌을 가린다. 고양이가 꼭 다른 포유류보다 영특해서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오래된 습관일 따름인데 그게 또 키우는 사람에게는 참 편리하다.

나는 고양이 똥과 오줌을 모래에서 떠내는 것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고양이 오줌 냄새는 독하고 똥 냄새는 구리다. 화장실을 치울 때면 코를 틀어막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양이의 똥과 오줌을 치우는 일이 더이상 귀찮거나 더럽지 않았다. 아니, 고양이의 화장실을 치우는 일이 하루를 여는 경건한 의식처럼 바뀌었다. 요즘 나는 단단하게 굳은 고양이 똥과 오줌을 주걱으로 덜어낸 뒤 모래를 평평하게 만든다. 그리고 주걱의 모서리를 이용해서 파도처럼 굽이치는 바다의 문양을 새긴다. 료안사의 가레산스이(枯山水)를 아침마다 새로 그리는 스님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그림을 그린다. 삶과 죽음의 이치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고양이 화장실 속 모래에 담겨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먹으면 싸고 싸면 먹고 그러다보면 늙고 또 죽겠거니.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반문한다. 나도 이젠 늙어가는 거냐.

지난 주말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갔다. 3일째 되는 날 완전히 주저앉았다. 뼈마디가 쑤셔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구나. 나도 이젠 늙은 거야. 고양이 화장실에 가레산스이를 그리는 아침을 되새기며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순간, 120살은 돼보이는 패티 스미스가 무대로 나왔다. 그녀는 10대처럼 무대를 가로지르더니 기타줄을 손가락으로 뜯어내며 소리쳤다. “미래는 여기 모인 너희다! 너희가 바로 미래다!” 나는 반성했다. 쑤시는 관절 따위 무시한 채 “나는 미래다!” 따위의 남부끄러운 구호를 몰염치하게 외치며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물론 더이상 고양이 화장실에 가레산스이 따위는 그리지 않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