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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내 인생의 사건·사고
이혜정 2009-08-28

열흘 전쯤의 일이다. 저녁 산책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아령을 사려고 구경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손님 무리 중 한분이 아령을 이리저리 들어보다가 갑자기 아령을 앞뒤로 흔들었고 그 흔들리던 아령은 내 코에 정통으로 부딪혔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가해자와 함께 병원을 갔다. CT까지 찍은 결과 오른쪽 코뼈에 실금이 가 전치 3주 진단이 나왔고 졸지에 가해자가 된 그분과 졸지에 피해자가 된 나는 별로 즐겁지 못한 얼굴로 헤어져야만 했다.

3천원짜리 아령을 사려다 병원비 40만원을 쓴 그분 마음도 좋을 리 없지만 황당하게도 코뼈에 금이 간 나는 코에 보호대를 붙인 채 일주일 동안 많은 설명들을 하며 지냈다. 남편은 자기는 절대 안 그랬다며 남편이 그런 줄 오해할 수도 있으니 구구절절 설명하고 다니라 하고 동네 아줌마 한분은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 코뼈 부러진 김에 코 좀 높였다며 코 성형하기 좋은 기회라며 충고아닌 충고를 한다. 코에 깁스를 한 기간 동안 녹음을 해서 묻는 사람마다 들려주고 싶을 만큼 설명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인생의 사건, 사고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 처음 사건은 초등학생 때 운동장 저쪽에서부터 활기차게 나를 향해 날아오던 축구공에 머리를 맞아 그대로 쓰러진 일. 석유곤로에 성냥불이 떨어져 홀라당 집 날릴 뻔한 걸 이불 하나 태우고 화상 좀 입은 걸로 끝난 일. 지나가던 남자의 손에 달려 있던 담배에 졸지에 담배빵 당한 일. 자전거 배울 때 뒤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려 바로 고꾸라지며 눈탱이 밤탱이 되었던 일. 안타깝게도 그 뒤로 자전거를 못 탄다. 고등학교 체육 선생한테 오리걸음 벌을 받다가 꽥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수차례 맞은 일. 대학 학보사 사진기자 때 집회 취재 중 날아온 돌에 카메라가 박살난 일. 차라리 내가 돌에 맞는 게 나을 텐데 비싼 카메라 어쩔 거야? 그러자마자 곧 다른 시위현장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허벅지가 움푹 들어간 일. 스키타다 보더가 내 허벅지를 보드로 강타한 일. 그리고 어김없이 내 차 꽁무니를 박아왔던 두번의 교통사고. 그렇다면 내 인생 최대의 사고는 무엇이었을까. 대학 신입생 때 낙산해수욕장에서 바다에 빠진 일. 그리고 누군가가 날 구해준 일. p.s 그 누군가가 지금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