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씨의 결혼보다 더 미스터리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다. 선생님의 장례를 치른 슬픔이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친구 이아무개는 “일종의 불가사의”라면서 “사람들이 너무 놀라고 겁나서 이젠 좀 제발 잘하라고 애원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민을 열받게 하다가 겁나게 하다가 드디어 애원하게 하는구나.
대안없이 누군가를 계속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만큼 사실 지치고 힘든 일도 없다. 우리 동네 큰길에는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 하겠다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처음에는 ‘말만 번드르르하네’ 싶었는데 요즘에는 ‘그래 부디 제발 그렇게 해줬으면…’ 싶다. 하느님 앞에서도 제대로 두손 모아 본 적 없는 내가 이 대통령과 정부에는 기도하는 심정이 된다.
각종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소비심리도 늘어난다는 보도(특히 KBS 뉴스)가 나오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실업급여 수급자는 1996년 이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이 넘었고 실질임금은 지난해에 견줘 월 10만원이 줄었다. 실업급여는 최장 8개월, 최고액은 하루 4만원이다. 그나마도 끊기면 대책이 없다. 한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빈곤 가구는 11%를 넘었다. 대체 누구의 경기가 나아졌다는 것일까. 기업? 기업의 순이익 규모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쳐내고 쥐어짠 결과다. 게다가 그 온기가 윗목까지 전해지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이미 아랫목과 윗목은 한 구들장으로 이어져 있지 않으니까. 서민 세제 지원 방안도 포장만 요란하다. 법인세 상속·증여세 소득세 등 덩어리 큰 감세 혜택의 대부분은 기업과 고소득층에 돌아간다. 세수는 줄고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 몫이다. 사회 안전망이 망가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를 걷어내면서 소득공제 몇푼 더해주는 걸 친서민정책이라고 우기니, 맨정신으로는 감당이 안된다. 차라리 믿어버릴까. 좋아해버릴까. 인질범에 잡힌 인질처럼 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어쩔 수 없이 병행한 위정자와 적극적으로 도입해 올라탄 위정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고 그 후유증의 차이는 치명적일 것 같다. 무섭다. 그래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