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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사랑의 기술”
2001-12-05

SENEF 위해 내한한 프랑스 비평가, 장 두셰

11월 마지막 날,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프랑스 비평가 장 두셰는 트뤼포의 에서 (앙트완 드와넬이 클리쉬 광장에서 목격한 어머니 애인이 바로 장 두셰다)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세월의 간격이 상당하니 외적 변화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었다. 2001년 SENEF영화제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내한한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1시간 내내 비평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비평에 임할 것을 강조했다.

장 두셰는 1929년 태생으로 고다르,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와 함께 1950∼6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활동했고 <파리는 나의 것>에 삽입된 짧은 단편 외 1968∼72년까지 로메르, 외스타쉬와 함께 조르주 상드, 쇼팽, 들라크르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카이에…> 친구들과 달리, 감독이라기보다 우선 비평가다. 장편영화의 부재와 다수의 저작(<빈센트 미넬리 읽기> <히치코크> <겐지 미조구치의 세계> <미국영화> <파리-시네마> <누벨바그>)이 그걸 말해준다. 그가 영화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쓴 건 1950년 친구였던 로메르가 간행한 <가제트 뒤 시네마>였으나 본격적인 비평 활동은 57년 <카이에 뒤 시네마>에 들어가면서였다. 64년 리베트와의 불화로 <카이에…>를 떠나게 된 경위에 대해 “50년대 후반 우리는 매일 저녁 만나 영화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 관점이 같았고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질문의 답을 영화로부터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리베트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잡지의 성향이 크게 변했다. 그는 무엇보다 바르트, 라캉, 푸코 등 당대 지성인들의 이론적 사유를 도입하려 했다. 이때부터 영화비평가는 구조주의자, 정신분석가, 인류학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텍스트 외적인 이론들로 영화에 접근하려는 방식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는 그는 비평을 ‘사랑하는 기술’에 빗댄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비평’이란 단어를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로 간주한다. 하지만 비평가는 진정으로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 대상의 어떤 면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따져보는 것처럼 비평도 작품을 보면서 받은 자신의 인상을 분석하는 행위다. ‘왜 저 장면이 내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 분석하다보면 자연스레 비평을 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훌륭한 비평가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열정과 명철함을 들었다.

‘디지털영화’에 관한 질문에서도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기술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건 그걸 적절히 이용하는 탁월한 예술가 덕이다”라고 말했다. 상이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서 뭔가 일관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영화와 비평에 대한 좀더 고전적인 접근. 그래서 그런지 질문에 대한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글 박지회/ 파리3대학 영화학과 박사과정·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