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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vs김봉석 (5)
2001-12-07

죽음- 남아있는 삶 속의 그림자

김 <원더풀 라이프>에서 이세야라는 청년은 과거의 기억을 선택하기보다 “미래의 꿈을 찍으면 안 되나요?”라고 묻는데 이것이야말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욕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감독이 영화를 찍는 것도 보고 싶어하는 무엇인가, 이를테면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기억을 영화에 담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요.

고레에다 좋은 질문이에요. 실제로 이 영화 속의 사람들이 과거를 복원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복원이기 때문에 기록이라기보다 픽션이 가미된 기억이죠. 이세야 역을 연기한 청년이 오디션에서 “나는 과거를 고르지 않고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겠다”고 말했는데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이 친구는 참으로 감독다운 답변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그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을 했고 그래서 영화에서도 ‘네가 한 말을 그대로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김 <환상의 빛>에서 <디스턴스>까지 감독님의 영화에서 공통되는 질문은 죽음과 기억인 듯합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일본인은 세계에서 죽음이란 것을 가장 탐미적으로 바라보는 민족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죽음은 추구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삶의 한 과정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죽음은 어떤 것입니까?

고레에다 사실이에요. 실제로 일본사람들이 죽음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영화개봉 뒤에 여고생들이 ‘아, 죽은 이후가 저렇다면 너무 좋겠어요’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을 보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저 저는 남아 있는 삶 속에 있는 죽음에 대해, 죽음의 그림자들이 삶에 어떤 그림자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싶었습니다.

김 그래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레에다 하! 죽음이라… 어렵군요, 음… 갑자기 철학시간이 된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죽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음… 죽음이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요. 유럽에 <환상의 빛>을 들고 갔을 때 유럽인들은 삶과 죽음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더군요. 하지만 저는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둘은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상영이 끝나고 Q&A를 하다보면 젊은 학생들이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저는 의미로 삶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의미를 따지게 되면 오히려 그 풍요로운 의미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어쩌면 의미를 두는 게 더 편할 때가 있죠.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람들은 명확한 죽음와 삶의 의미가 있겠죠. 현재의 미국인들도 테러와 함께 분명히 그런 게 생겼죠. 일본도 전쟁 때는 천황을 위해 싸우겠다는 그런 사고방식이 있었고 혁명을 위해 쓸데없는 개죽음을 당한 적도 있었고요. 어떻게 보면 일본은 비로소 이런 사고방식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기가 온 듯합니다. 의미에 구애받지 않고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거죠. 의미의 억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정말 훌륭한 답변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더욱 당신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군요.

고레에다 내년이면 제가 마흔이 됩니다. 앞으로 10년간은 정말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지켜봐주십시요.

대담정리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