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고레에다 히로카즈vs김봉석 (2)
2001-12-07

기억- 고통과 행복의 양면

김 개인적으로 <원더풀 라이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죽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서 영원으로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강한 확신과 함께 심판이나 처벌이 기다리는 사후가 아니라, ‘행복한 사후’라는 독특한 인식이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까.

고레에다 내가 만들어서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 속 이세야란 청년의 “나쁜 일 해도 지옥에도 안 가고 처벌도 없나요?”라는 대사를 특히 좋아하지요. (일동 웃음) 타자에 의한 심판이 아니라 자기책임하에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음에 들어요. 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겠군요. 어릴 적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 즉 치매에 걸려서 고생을 하셨어요. 당시에는 치매가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는데 그저 ‘할아버지가 왜 아기처럼 금방 점심을 먹고도 또 점심을 달라고 하는 거지?’, ‘왜 옆집에 가서 우리 며느리는 점심을 안 준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기억하지 못할까’ 하며 속상해했었죠. 결국 우리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자와의 관계조차 망각한 채 돌아가셨는데, 그 사건이 저에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속에 벚꽃을 좋아하던 치매 할머니는 조금 더 귀엽게 그렸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녹아 있는 경우예요. 이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나의 의문의 출발점이자 이 영화의 구체적인 출발점입니다. 방송사에서 여행프로그램 조연출을 하던 시절, 현장에서 찍어온 테이프를 밤새 편집실에서 졸음을 쫓아가며 프리뷰를 해야했어요. 그 비몽사몽간에 일련의 번호표를 붙인 채 쌓여 있는 테이프를 보며 “만약 내가 40살에 죽었고 40개의 테이프가 저렇게 쌓여 있다면 어떨까?”하는, 즉 죽은 뒤 지난 인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것이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이미지였던 것 같습니다.

김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자가 자신의 기억을 고르는 데 비해 감독님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을 보면 죽은 자가 남긴 기억 때문에 산 사람들이 괴로워하잖아요. 최근작 <디스턴스> 역시 마찬가지죠. 죽은 자가 산 사람에게 기억을 통해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국 기억이란건 뭘까요. 슬픈 것일까요? 괴로운 것일까요?

고레에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사람들은 죽은 뒤지만 그 안에서 7일간 나름대로 살아 있고 성장합니다. 또한 아라타가 영원의 세계로 떠나면서 간직한 것은 그 림보역에서 있었던 기억이고 남은 여자는 아라타의 기억을 안고 그곳에 남습니다. 결국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서로 기억을 공유하는 가능성을 그렸다고 봅니다. 하지만 <디스턴스>는 기억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김 맞아요. <환상의 빛>에서 주인공은 남편이 왜 죽었는지를 알지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그것을 판타지로 치유하고 있는데 <디스턴스>를 보면 그것이 또다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레에다 양쪽 다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이 그런 게 아닌가요? 양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디스턴스>와 <환상의 빛>을 그렇게 절망적으로 그리진 않았습니다. 두 영화의 마지막은 나름대로 출발점에 서 있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환상의 빛>에서 여자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요. 그러나 두 번째 남편을 만나면서 비로소 ‘모른다’라는 사실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죠. 결국 <환상의 빛>은 이 여자가 한발짝 나아가기까지의 5년간을 그리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으로부터 치유되고 어떻게 그 기억을 극복하는지를 그린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 다음 페이지 계속 [해답- 영화속에 없다. 관객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