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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행복 <나는 행복합니다>
강병진 2009-11-25

synopsis 만수(현빈)는 도망친 남자다. 치매에 걸린 엄마, 도박에 빠져 매일 동생에게 돈을 요구하는 형에게서 벗어나 정신병원으로 도망쳤다. 과대망상증을 얻은 만수는 자신의 부모가 스위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부자이고, 자신이 서명만 하면 모든 종이가 수표가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한편, 만수의 담당간호사인 수경(이보영)은 도망치고픈 여자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둔 그녀 역시 병원비와 카드고지서에 시달린다. 게다가 한때 사랑했던 동료의사는 아무런 배려가 없다. 만수와 수경은 서로의 고통을 조금씩 알아보고, 약간의 위로를 나눈다.

영화는 머리를 묶는 수경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언뜻 봐서는 간호사인지, 환자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이어 그녀가 만수를 바라볼 때, 얼굴이 드러난다. 두 남녀는 같은 얼굴을 가졌다. 갈라진 입술, 내려앉은 다크서클, 푸석한 피부. 만수와 수경은 서로의 거울이다. 영화는 만수가 과대망상에 이르기까지의 사연과 수경의 고달픈 생활을 정교하게 교차시킨다. 빚 독촉을 받고, 카드 사용이 끊기고,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받는 그들은 똑같은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다. 만수의 과거가 수경의 현재이거나, 만수의 현재가 수경의 미래다. 여기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연대에서 연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기대할 법하지만, <나는 행복합니다>는 로맨스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행복합니다>는 그들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스쳐지나간다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다.

<나는 행복합니다>의 원작은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조만득씨>다. “병원생활이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라는 원작의 설정”에 끌린 윤종찬 감독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수는 과대망상증을 통해 행복을 찾지만, 병원은 그를 과거의 상처와 대면시키며 제자리로 돌려보내려 한다. 최선을 위한 노력이 최악을 향한다는 점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는 윤종찬 감독의 전작들이 가진 결을 다시 짚을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소름>의 용현(김명민)은 참혹한 과거를 망각하려 하지만, 결국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꿈에 다가갈수록 발목을 잡히는 <청연>의 박경원도 비슷한 삶을 산 여자였다. 망각을 깨우려는 사람들에게 만수는 울부짖는다. “니들은 날 질투하는 거야. 내가 너무 행복하니까….”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인간에 대한 윤종찬 감독의 관심은 여전하다.

당연히 <나는 행복합니다>는 행복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현빈과 이보영 등 선남선녀 스타가 미모를 뽐내는 경연장은 더더욱 아니다. 외로운 사람을 더 지독하게 몰아붙인다는 점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는 관객의 호오가 갈릴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절절한 아픔일 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고 싶지 않은 고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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