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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만행 재현 <카운테스>
이영진 2009-12-02

synopsis 트란실바니아의 귀족 엘리자베스 바토리(줄리 델피)는 어머니의 강압에 못 이겨 헝가리의 나다스키 백작과 결혼한다. 20년 뒤 전쟁 영웅이었던 남편이 죽자 그녀의 위세는 외려 더 높아지고, 그녀의 미모와 재력을 탐내는 남자들이 줄줄이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모두 거절한다. 얼마 뒤 그녀는 무도회장에서 젊은 남자 이스트반(다니엘 브뤼)을 만난다. 그에게 반한 그녀는 사랑을 약속하지만 이스트반은 얼마 뒤 떠난다. 이스트반의 배신 이후 늙음을 한탄하던 그녀는 갖가지 피의 기행을 벌인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612명의 처녀를 살해한 뒤 그 피로 목욕했다는 중세의 괴물. 허영심과 폭력에 전염된 이 광기의 실존 인물은 유럽에선 단골 소재였다. 1970년대 <네크로폴리스> 이후 1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자신의 영지에서 과일을 훔친 소녀의 몸에 꿀을 발라 벌에 쏘여 죽게 하는” 등 이 무시무시한 백작 부인의 고문 기술은 쾌락을 위한 악의 문화사에서 빠지지 않고 회자되어왔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분명한 건 사드 백작의 엽기 행각이 그녀가 벌인 피의 향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우 줄리 델피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카운테스>의 주인공도 바로 그 엘리자베스 바토리다. 하지만 <카운테스>는 16세기 한니발 렉터라고 부를 만한 이 ‘철의 여인’을 색다르게 윤색하지 않는다. 입으로 전해져 온 악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만행을 충실하게 재현할 따름이다. 그녀는 왜 스스로 괴물이 됐을까. 누군가 괴물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녀가 파괴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카운테스>는 슬쩍 건드리는 척하지만, 깊게 파고들어 질문하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리는 여자들은 열등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에게 ‘아랫도리’ 간수 잘하라던, 배포 큰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사랑을 잃자 정신을 놓고 흡혈한다.

실제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남성 귀족들이 그녀를 마녀로 내몰았다는 추정도 있지만, <카운테스>는 이 또한 이야기를 서둘러 닫기 위한 사소한 장치로만 사용할 뿐이다. 주연까지 도맡은 줄리 델피는 파리한 인상으로 결핍과 욕망과 파괴의 감정을 수시로 내보이는 데 능숙하지만, 심심한 모노드라마의 구조까지 어찌하진 못한다. <굿바이, 레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출연한 다니엘 브륄이 백작 부인의 연인 이스트반으로, 윌리엄 허트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튜르조 백작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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