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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상봉한 부자간의 에피소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장영엽 2010-01-13

synopsis 지현(이나영)은 돋보이는 외모의 포토그래퍼다. 일은 순조롭고, 연애도 초록불이다. 특히 최근에는 영화 현장에서 만난 동료 준서(김지석)와 잘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현의 집으로 유빈(김희수)이란 남자아이가 찾아온다. 친아빠를 찾는다는 이 아이의 아빠 이름도 ‘지현’이다. 알고보니 유빈은 지현이 여자가 되기 전 하룻밤의 실수로 낳은 아이다. 지현은 친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유빈을 위해 ‘남자’로 변신한다.

일단 설정은 영리하다. 트랜스젠더라는 센 캐릭터와 아빠 찾는 아이의 조합이라니.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혈연으로 맺어졌으나 뒤늦게 상봉한 부자간의 에피소드를 중심축으로 한다. 여자로 성전환한 지현은 친아빠를 찾아온 유빈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던 남자 가발을 다시 쓰고, 콧수염을 붙인다. 직장인 영화 현장과 집을 오가며 하룻밤 사이에 남자/여자로 바쁘게 변신하는 지현의 모습에선 코미디적인 요소도 감지된다. 가족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코미디. 이걸 승부수로 내민다면 <헤드윅>처럼 요란스런 분장을 하거나 절절한 애환을 노래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트랜스젠더 얘기를 꺼낼 수 있으리라.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트랜스젠더는 이나영이다. 맑은 얼굴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이 친근한 이미지의 여배우를 기용해 영화는 트랜스젠더와 관객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려 한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그런 밝은 분위기가 과잉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는 거다. 지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숨길 수밖에 없던 자신의 과거를 힘들게 털어놓을 때, 혹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남자친구가 지현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 진지한 장면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약간의 유머가 개입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요소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진지해도 될 장면에서 진지하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조연배우의 역할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현이 스틸기사로 활동하는 영화 현장의 쌈마이 감독이나 배우들, 유빈의 새아빠의 친구로 등장하는 형사는 일회성 유머에 소비된 뒤 효과적인 감초 역할을 하지 못한다. 캐릭터의 활용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빠를 오가는 쉽지 않은 캐릭터를 맡은 배우 이나영에게선 특유의 신비감을 벗고 현실에 안착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콧수염을 붙인 채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장면에선 모 남자배우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100% 만족스러운 연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아이와 유대감을 쌓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꽤 편안하게 느껴진다. 모 가전제품 광고에 아역배우와 함께 나올 때 느꼈던, 그 포근함을 닮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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