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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박력의 금발
2001-12-12

경쾌한 뱀파이어 해결사 시리즈 <버피와 뱀파이어>

(Buffy the Vampire Slayer) NTV(방송시간은 www.ntv19.com 참고)

사는 데 아무런 생각이 없던 치어리더 버피는 어느날 한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를 만난다. 그 아저씨 왈, 버피는 대대로 내려온, 뱀파이어를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해결사라는 것이다. 이리도 황당한 일이 있나? 뱀파이어가 이 세상에 있다니? 결국 버피는 걱정없던 생활을 버리고 뱀파이어 퇴치에 나서게 된다. 그 뒷이야기가 MBC에서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황당무계한 제목으로 방영되었고, 현재 NTV에서 <버피와 뱀파이어>로 방영중이다. 그리고 OCN을 잘 뒤져보면 원작격인 영화 <뱀파이어 해결사>를 볼 수 있다.

TV판 <버피와 뱀파이어>는 극장판 <뱀파이어 해결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지난번 학교에서 학교 체육관을 불질렀던 사건 때문에 버피의 어머니는 결국 서니데일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간다고, 서니데일은 사실 지옥문 바로 위에 생긴 마을. 흡혈귀 및 온갖 괴물이 그 지옥문에 이끌려 계속 침투해온다. 극장판이 좀더 황당무계하고 덜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둘 다 매력 포인트는 비슷하다. 경쾌하다는 것이다.

TV시리즈 버피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파워 업! 사라 미셸 겔러이다. 보통 금발머리 여자는 맹해보인다는 공식(버피 극장판의 크리스틴 스완슨도 여기선 못 벗어난다)을 온몸으로 깨보인다. 제작자 조스 웨든이 ‘더이상 금발머리 여자가 도망가는 것은 보기 싫어서’ 만들었다는 버피라는 캐릭터는 매우 화통하다. 사라 미셸 겔러는 이 드라마로 하이틴물의 여왕으로, 또한 전사로 등극했다. 온몸이 병기인 최강 전사 <다크 엔젤>의 맥스 캐릭터도 버피에게 빚을 진 것이 사실이다.

<버피와 뱀파이어>는 사실 굉장히 촌스럽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렇게 고전하다가도 몇번 발차기로 혹은 아주 허술한 일격으로 악당을 때려눕히면 솔직히 약간 허무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함과 비례한 촌스러움과 닭살도 다 넘어가게 해주는 것이 바로 쾌활함과 박력이다. <버피와 뱀파이어>는 정말로 박력과 즐거움 그 자체다. 진짜 무슨 만화 같은 전개도 서슴지 않고, 자신이 조악한 시리즈라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돈없어서 돈없다 티를 낸 시리즈 중에는 <사이버게임>(Deadly Game)도 있었지만, 버피 시리즈처럼 돈없음을 박력으로 변환하는 힘은 그 어디서도 흔치 않다.

버피는 어머니 앞에서는 점잖은 척 의연한 척 다 자란 척이지만, 정작 자기 후견인 자일스 앞에서는 늘 어리광이다. 징징대는 사안은, 자신은 뱀파이어 해결사지만 이전에 10대 학생이고 사생활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시즌 1에서는 주로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시즌 2에서부터 뭔가 좀 방향이 달라진다. 또다른 뱀파이어 해결사가 등장하면서, 영혼을 지닌 뱀파이어 엔젤이 버피의 삶에 더욱 깊이 개입하면서, 그리고 엔젤과 버피의 사랑이 시리즈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얄팍함이 외려 장점이 되는 <버피와 뱀파이어>는 그 얄팍함 안에서도 깊이를 가진다(이런 모순이 가능한 것이 바로 버피 시리즈의 미덕이다).

그 미덕이란 바로 언제나 솔직 담백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솔로몬 가족 외계인들의 비정상적인 행태 뒤에는 ‘솔직함의 미덕이 동그란 빛을 발하듯이’ 버피 시리즈의 얄팍함 뒤에도 솔직 담백함이 자리잡고 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 개폼 잡기에 여념없다- 버피와 친구들을 비롯하여 흡혈귀 엔젤, 스파이크, 하다 못해 끈적한 드루실라까지 폼을 재고 있는데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그러나 고깝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지한 것뿐이므로. 게다가 특수성보다는 오히려 시청자가 동화될 요소를 더 갖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흡혈귀 스파이크는 완전 악당을 자처하지만 툴툴대는 십대망아지 성향을 보인다(그래서 나이 200살 넘게 먹어놓고도 버피 어머니한테만은 꼼짝을 못한다). 인물을 잘 쓰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는 바로 코델리아다. 가장 도움 안 되어야 할 왕공주 캐릭터 코델리아도 당당히 주연명단에 올라가 있으며, 실제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등공신이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얄팍해 보이는 이야기임에도, 모든 장르를 다 종횡무진 누비며 인물들간에 넘치는 박력이 시청자에게까지 전염된다. 그래서 버피 시리즈를 보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시청자가 기분이 ‘째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이틴 로맨스부터 호러물, 코믹물 모두를 거침없이 망라하는 버피 이야기,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보고 싶은 에피소드는 뮤지컬 버전! ^^ 아 참, 버피 시리즈의 스핀오프가 생겼다. 바로 <엔젤>. 버피와 헤어진 엔젤은 LA로 가서 사설탐정을 하며 인간을 구원하려 한다. 여자는 뱀파이어 해결사. 남자는 인간 해결사!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