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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4]

제 3장 야외세트장 입성

주병도 미술감독 인터뷰

2001년 10월7일 저녁. 날씨 맑음.

이미 <취화선> 팀은 추석이 끝나자마자 이틀 뒤에 양수리 야외세트장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약간의 일이 생겨서 이틀 뒤에나 떠날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상상은 하고 있었지만, 도착하는 순간 펼쳐진 야외세트장은 넋을 잃게 할 정도였다. 이 세트장을 지은 사람은 MBC미술팀의 주병도 미술감독이라고 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세트를 만들었을 때 다른 사람 칭찬을 잘 안 하는 박광수 감독으로부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세트장"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명불허전. 어쩌면 이건 이제까지 그의 세트 중에서 최고 걸작인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 모든 분야가 다 결정되고 난 다음에 미술만 남은 상태였지요. 한국영화는 한 사람과 일하면 그 사람과 계속 일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춘향뎐>을 작업했던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내가 이제까지 한 영화는 <영원한 제국>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리고 드라마 <체인지> <초록 물고기> <이재수의 난>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물론 <뽀뽀뽀> 같은 프로그램도 합니다. (웃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기억에 많이 남죠. 미술 공부할 때 민중미술도 그리고 그랬으니까. 당시 피복공장들 자료들 들고 그 안에서 아이들 키 높이로 낮게 만들어진 문지방과 집단화장실,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때만 해도 박광수 감독이나 유영길 촬영감독이 하고자 하는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냥 캔버스에 그림 그리듯이 소도구들도 햇빛을 받아 살아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나리오가 덜 나온 상태였습니다. 조선 말기의 종로 거리가 중요하다는 말만 듣고 세트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나한테 이것은 화가의 드라마라기보다는 조선 말기 사극인 셈인데, 집 구도를 잡기 전에 먼저 집채를 파악해야 했고,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 한국에 남은 조선시대 양식의 좋은 집에 대한 자료를 보고, 사진 남은 걸 보고, 건물이 남은 건 답사를 가서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물론 그대로 재현하면 좋죠. 그러나 여기에는 경제성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죠. 토목공사를 할 때부터 일종의 원형경기장처럼 만들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래야 프레임 안에 한번에 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중첩도 되고, 소나무도 걸쳐서 찍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뒤의 배경은 나중에 모두 컴퓨터그래픽으로 지우고 궁궐을 그려넣을 예정이기 때문에 방향배치를 염두에 넣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영화 세트장이기 때문에 반드시 촬영에 용이하게 일조량과 햇빛의 방향을 신경써야만 했습니다. 입방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역시 돈이 문제지요(참고로 이 세트 제작비는 22억원이 들어갔다. <취화선>의 촬영이 끝나면 양수리 오픈세트장에 기증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국영화는 19세기 말 종로 거리 하나를 갖게 된 셈이다)."

사실 집채 수가 제일 고민이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감독님의 감이 정확했습니다. 집채 수가 늘어난 겁니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로 들여다보면 거리의 깊이가 나와야 하니까요.

도면에서 시나리오가 나오면서 수정을 한 대목도 있습니까.

"네, 이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집채가 늘어난 부분도 있습니다. 기생 진홍의 집은 원래 찍기로 한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봤더니 터만 남고 사라진 겁니다. 시장 복판에서 찍을 생각이었는데, 그 시장이 사라진 겁니다."

그러면 원형을 염두에 두고 복원한 것입니까.

"원형이 어디 있습니까? 시장 자체가 사라졌는데. 그냥 돌담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했죠. 그리고 감독님이 무얼 그리워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지었습니다. (웃음) 이런 게 참 어렵습니다. 장승업의 천재성, 그러나 모호한 신분성 같은 것, 그리고 그 주변의 여자들의 각기 다른 성격들, 이런 것들을 영화미술의 비주얼로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영화미술이란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요구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화면이 열리면 바로 내용에 빨려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보는 사람이 이게 참 공들여 만든 것이구나, 라고 눈치채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가 미술이면 그건 실패한 겁니다. 그냥 바로 빨려 들어가야 합니다. 영화미술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 서서 그냥 보고 있으면 화창한 날에도 괜히 슬퍼지는 느낌이 중요했습니다. 왜, 짠 하는 느낌 있잖습니까(주병도 미술감독은 짠, 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는 정말로 그 짠, 하는 느낌을 만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장인이었다)?

나라는 기울어가고 있는데, 왠지 쓸쓸한 기분을 여기 담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집 자체는 이미 거기서 계급이 결정난 겁니다. 기와집을 지으면 거기 양반이 사는 거고, 초가집을 지으면 민초들이 사는 겁니다. 그러나 그 기와집에 연탄재를 뿌려서 그 집이 기울어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심으려고 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거기 서 있는 사람들에게 스며들면 되는 겁니다. 어느날 아침 일찍 감독님이 언제나처럼 혼자서 세트장을 걷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 가니 갑자기 나한테 감독님 이야기가 왠지 눈물이 난다, 라는 말을 뜬금없이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하고 물으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를 거야, 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때 속으로 성공했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말려들어갔구나, 하는 느낌, 감독님이 거기서 짠, 한 느낌을 받으신 거죠.” (웃음)(주병도 미술감독과의 인터뷰)

현장에 도착해서 먼저 김성룡 제작실장에게 인사를 드렸다(아마 여러분도 이 사람을 알 것이다.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과 한판 승부하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유도사범인 마루오카 경부라면 기억이 날 것이다. 그는 이 영화 이후 제작 일을 하면서 현장에 머물렀는데, 종종 촬영 중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이 사람이 영화현장이라는 장소를 정말 사랑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한국영화의 힘은 현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내일 촬영이 38회째이며(사실 이 말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개봉예정인 이미연 감독의 <버스, 정류장>은 28회에 촬영했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는 178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전체 분량 중 30% 정도를 마쳤다고 한다. 현장에는 진홍 역의 김여진씨가 내일 도착한다고 한다. 다시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읽다가 잠들었다.

임 감독의 눈만이 발견하는 동선의 오차

2001년 10월8일 날씨 낡음.

임권택 감독의 현장은 촬영 시작 시간 여부에 관계없이 아침 6시에 기상한다. 만일 출연자들이 많아지는 날이면 이 시간은 더 빨라진다. 연출부들은 대부분 5시면 이미 현장에 미리 도착해서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엑스트라들의 분장을 일일이 확인한다. 오늘 장면은 장승업이 방랑하던 중 드물게도 살붙이고 살던 기생 진홍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찍는 날이다.

장면 #78 진홍의 셋집(마당)

(승업, 마당으로 내려서며)

승업 “개똥아 일어나. 혹부리 영감네 해장국 먹으러 가자. (대답이 없자 개똥이 방문을 열며) 이 새끼가 아직도 자빠져 자나. 야 임마. 일어나! 어라, 이게 뭐야?”

(승업, 방 안으로 들어가 개똥이를 깨운다)

승업 “야 임마 일어나 봐! 누가 왔다 갔냐?”

개똥이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잤는데….”

(승업, 부엌에서 일하는 진홍에게 다가가며)

승업 “이거봐, 누가 다녀갔어? (진홍 대답 없자) 누가 다녀갔어? 평산이가 다녀갔는가?”

진홍 “평산?”

승업 “그 환쟁이 놈 말이야.”

진홍 “평산이가 뭐 어쨌다고? 평산이가 뭐 어쨌다고!”

승업 (혼잣말로) “내가 한번도 안 그린 지두화를 그렸나보네.”

진홍 “그래 나 평산이랑도 붙어먹고, 기산이랑도 살았다. 기생년이 이놈 저놈 붙어산 게 그리 흉이냐? 내가 니놈하고 속궁합만 맞아서 산 줄 알아? 애들 모냥 천진스럽고 착해빠진 심성에 정 붙이고 산 거지. 그래 내가 미친년이여. 셋집까지 얻어 살림 차린 내가 미친년이다. 이 개자식, 그림 판 돈으로 판판이 마시고 돌아다녔지. 여태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그 잘난 붕어 그림 달랑 하나 그려놓고는 사방 빈 벽 구석에 장롱 한짝 채워줘 봤어, 끼니 걱정돼 쌀바가지 들고 와 봤어?

(시간경과)

진홍 (봇짐 싸들고 나가는 승업에게) “누가 나간다고 하면 겁낼 줄 알어, 내가? 어디 한두번 기어 나갔나? 니가? 그래, 가라 가, 겁 안 나 내가.”

임권택 감독은 진심으로 김여진씨의 연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대사를 시작하면 종종 눈감고 들어보기도 한다. 우선 임권택 감독은 장승업의 자리에 앉아서 김여진에게 대사를 시켰다. 김여진은 몰입이 빠른 배우였다. 시키자마자 잠시 눈을 감고 대사를 외운 다음 눈을 뜨더니 이미 그 순간 기생 진홍이 되어 있었다. 흥을 못 참은 그녀는 심지어 바로 임권택 감독의 멱살을 쥐어 채더니 분에 겨워 소리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감독님 얼굴에서 예의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그 다음에는 최민식씨를 세워 놓더니 진홍의 자리에 앉아서 반복해서 장승업의 연기를 시켜보았다. 두번 서로 상대의 자리에 서서 양쪽의 대사와 연기를 점검하더니 정일성 촬영감독을 돌아보면서 짧게 한마디 했다. “좋은데요.” 두 사람 사이에서 이 이상의 만족을 표현하는 다른 말은 없다. 구도는 대부분 아주 중요한 대목이 아니면 정일성 촬영감독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대신 임권택 감독은 연기 동선을 꼼꼼하게 지적해주었다. 만일 거기서 벗어나면 어김없이 엔지를 불렀다(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약간의 오차만 벌어져도 그것을 발견하는 눈썰미였다. 얼핏 보기에비슷해 보이는데도 그것을 영락없이 찾아냈다). “동선의 결정이라, 글쎄 그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하하, 하지만 이게 중요한 거지. 감정선이 동선을 따라가고 있느냐 아니냐는 거지요. 그걸 놓치면 이 사람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잖아요? 그냥 이야기만 따라가느라 급급한 거지요.”(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 영화의 화면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그 하나는 드라마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 사이의 관계에서 숏이 결정된다.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의 숏은 부분적인 신이자 동시에 프레임의 역할을 한다. 역설적으로 그의 영화의 숏은 시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구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롱테이크로 찍히건, 아니면 신을 여러 개의 숏으로 나누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걸 잘라내는 순간 인물의 감정이 이야기와 연결지어져 있는 그 고정점의 위치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는 한 숏 안에서 더블액션과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건너뛰는) 점프컷을 섞어서 사용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은 감정선이다. 그의 프레임 안에서 두명 이상의 인물이 있을 때 누구의 선을 따라가느냐가 중요하다. “그건 임 감독이 결정하지요. 그럴 때 나는 꼭 임 감독에게 카메라 앵글을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가끔 내가 비어 있다고 생각할 때에도 임 감독은 그게 차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 감독은 프레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편집이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숏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정일성 촬영감독 인터뷰) 임권택 감독은 이미 편집이 다 되어 있는 영화를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그의 영화는 실제로 연역적이다.

김여진씨의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이 배우는 보기 드물게 롱테이크에 강한 연기자이다. 나는 안성기 선배를 다른 자리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가 “카메라가 일분 이상 돌아가고 있으면 힘들어진다”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김여진은 반대로 대답했다. “나는 롱테이크가 편해요. 컷을 따는 것보다도 카메라는 의식 안 하면 되니까. 뭐 동선만 잡으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자유로운 거 같아요. 그냥 내 몸이나 손 발끝을 내버려두면 되니까요. 사실 카메라가 따고 들어오면 더 힘들어져요. 따고 들어오면 다시 긴장하고 그 연기를 잠깐 하고는 그걸 연결시키기 위해서 아까의 감정을 기억해야 하잖아요. 오늘 장면은 정말 힘들었어요. 감기까지 걸려서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고요. (웃음) 제일 힘든 건 클로즈업이죠. 사실 장면을 찾아가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 사이즈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나는 제일 좋은 건 풀사이즈의 연기예요. 해보는 거죠.”(김여진씨와의 인터뷰)

그녀는 롱테이크를 버틸 줄 안다. 그녀가 임상수 감독(그는 임권택 감독 연출부 문하생 출신이다)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첫 데뷔했을 때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롱테이크 센스는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나는 설경구의 연기보다 김여진쪽이 훨씬 진짜처럼 보였다. 바람맞다 매맞는 장면에서 그 좁은 방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그녀의 연기동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날 밤에는 장승업이 양반집에서 곽 선비에게 자기 그림에 깊이는 없고 그저 재주만이 보인다는 빈정거림을 듣고 나서 진홍의 집에 술 취한 채 돌아와 화를 내면서 잠드는 장면의 야간촬영이 있었다.

장면 # 75 진홍의 셋집(방 안)

승업 “문자향? 사서화 삼절? 좋아하시네, 니기미. 야! 제발이 꼭 붙어야 그림이냐? 그림은 그림대로 보기 좋으면 끝나는 거야. 그림이 안 되는 새끼들이 거기다 시를 쓰고 공맹을 팔아서 세인들의 눈을 속여 먹을랴구 그래. 여봐, 술이나 더 가져와!”

이 장면은 진홍의 집에서 방 안 한쪽 벽을 뜯어내고 카메라를 고정시켜서 한 장면으로 끝낼 참이었다. 제일 먼저 임권택 감독이 한 일은 어느 위치에서 이 장면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관점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회화적인 개념이라기보다 건축적인 의미가 더 큰 것처럼 보였다. 그의 영화에서 여러 사람이 움직일 때조차 장 르누아르보다는 프리츠 랑의 흔적을 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그 안에서 소도구를 배치했다. 번번이 소도구를 놓다가 연출부가 야단맞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이 현장에서 드문 풍경이 아니다.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감독님은 “야, 이놈아, 넌 그렇게 놓으면 수저는 어느 손으로 들래”라고 꾸중하기도 하셨다. 임권택 감독은 소도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화면이 만들어내는 삶의 감각의 대부분은 여기서 배어나오는 것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소도구조차 몇번이고 다시 놓는다. 그러고나면 연기 동선을 먼저 그은 다음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카메라의 거리를 잡았다. 그 위에 조명의 기준점을 결정한다. 드라마의 고민은 그렇게 잡힌 다음에야 시작된다(실내를 찍을 때에는 대부분 이 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예외적인 몇몇 장면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 순서대로 작업했다). 장면상으로는 장승업이 주도권을 쥐고 소리소리 지르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은 대번에 엔지를 불렀다. 그러더니 김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진홍이는 근데 지금 모하고 있나? 여기서 장승업이가 난리를 치고 있어도 이 신의 주인공은 진홍인 거여.” 감독님은 장승업이 내내 소리지르는 동안 진홍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몇 가지 동선을 더한 다음 지켜보았다. 슛, 사인이 들어가자 최민식씨의 술 주정이 시작되었고, 그걸 카메라로 찍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입에서 오케이!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은 “아니, 아니, 잠깐” 하시더니 최민식씨에게 한마디했다. “진짜 안 같아보여.” 아무리 구도가 좋고 모든 타이밍이 맞아도 그게 가짜 같으면 임권택 영화 안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이 나는 무섭다. 그건 연기를 그럴듯하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훈련된 배우가 그럴듯하게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건 최민식씨에게 왜 아직 장승업 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채근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너는 바깥에서 서성거리냐는 나무람이다.

최민식씨 자신도 무언가 맞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상하게 계속 엔지가 났다. 그걸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불현듯 이 사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식씨는 매번 테이크가 갈 때마다 자꾸만 변해가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때로는 미세한 차이이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기도 하면서, 이 손으로 잡았던 것을 저 손으로 잡기도 하면서, 이미 주어진 연출의 틀 안에서 자꾸만 다른 것을 해보고 있었다. 나는 임권택 감독과 최민식씨가 그 좁은 방 안에서 만들어가는 장면이 익어갈수록 현기증이 날 만큼 부러웠다. 그건 분명히 대가가 훌륭한 연기자를 끌어안고 만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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