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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영화적 발레’를 만나세요
송경원 2010-05-10

미클로시 얀초 특별전, 5월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침묵과 외침>

‘얀초의 나라’가 찾아온다. 60년대 뉴웨이브의 그늘 아래에서 형식을 통한 전복적 영화에 관한 시도는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러나 헝가리의 미클로시 얀초 감독만큼 독자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일관된 세계관을 표현한 감독은 드물다. 얀초의 형식 미학은 누구와도 겹치지 않고 낯선 세계 위에 홀로 서 있다. 어떤 이론적 틀 안으로도 포섭시킬 수 없는 그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정의내리는 데 있어 ‘얀초의 나라’보다 적합한 표현을 찾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제11회 전주영화제는 세계 영화사에 큰 자취를 남긴 거장 감독들을 소개하는 ‘오마쥬’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을 ‘얀초의 나라’로 초대했다. 하지만 미처 전주를 내려가지 못한 관객을 위해 5월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미클로시 얀초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는 <붉은 시편> 이전, 얀초 감독의 ‘혁명적 시학의 완성’을 확인할 수 있는 60년대 대표작 6편이 상영된다.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것은 단연 60년대 얀초의 대표작인 <적과 백>이다. 세계 영화사를 언급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작품은 얀초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얀초 미학을 알려준다. 1만여명의 헝가리 의용군과 소비에트 적군과의 전쟁을 그린 이 영화는 단순한 영웅적 투쟁기가 아니다.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로 승리한 전쟁의 결과가 아닌 전투의 과정을 롱테이크와 롱숏을 통해 심도 깊게 담아내는 것이다. 개인보다 군중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흔히 ‘영화적 발레’라고 일컫는 이러한 카메라 움직임은 거대한 전투장면을 일종의 집단무용처럼 형상화해 얀초의 형식 미학을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적과 백>이 얀초 스타일의 집대성이라면 1963년작 <칸타타>는 해외에서 주목받으며 얀초 스타일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사회주의 영화에서처럼 영웅적인 혁명투사가 등장하지 않는 대신에 전도유망한 의사 암브루슈가 품는 여러 회의를 통해 당시 헝가리 사회의 모순을 우회적으로 꼬집고 있다. “공산권 영화로는 드물게 지식인의 위기의식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에서 얀초는 특유의 주관적 세계관으로 스스로 완성시킨 ‘혁명적 시학’의 방향을 다듬기 시작한다. 국가적 우화를 형식의 물결에 담아내기 이전 얀초의 도덕적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다.

얀초가 제시한 혁신적인 영화 언어는 내러티브에 묶이지 않고 이미지를 메시지로 직접 변환시킨다. 단지 몇개의 숏으로만 구성된 1968년작 <침묵과 외침>은 이러한 형식 미학의 극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헝가리 적군이었던 도망자 이스트반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정치체제가 변해도 상관없이 반복되는 폭력 그 자체를 무상한 시간의 흐름과 대비해 직접 이미지화한다.

이 밖에도 소련군 콜리아와 포로가 된 요스카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1964)과 헝가리의 전설적인 의적 산도르 로자의 이야기를 다룬 <검거>(1965) 역시 우화적으로 표현된 헝가리 사회상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적과 백>과 더불어 발레 같은 카메라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결>(1969) 또한 얀초의 혁명적 시학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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