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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시란 추한 곳에서 아름다움 찾는 것"
2010-05-19

(칸<프랑스>=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시'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꽃처럼 아름다운 것뿐만이 아니라 추하고 더러운 것 뒤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19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영화 '시'의 언론 시사가 끝난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영화 '시'는 시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던 영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영화 '시'가 "문학의 한 장르로서 시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예술, 또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라며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가 어떻게 해서 시가 될 수 있는지,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시가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를 찾는 영화"라고 덧붙였다.

'시'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마이크 리 감독의 '어너더 이어', 켄 로치 감독의 '루트 아이리시' 등 나머지 18편의 영화와 황금종려상을 놓고 겨룬다. 이날 언론 시사가 끝난후에는 박수 갈채가 이어졌고 일부 외신 기자들은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영화는 소녀 같은 60대 여성 미자가 처음으로 시를 쓴다는 이야기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한 소녀를 둘러싼 주변인의 이야기로 이뤄졌다. 그리고 주인공 미자가 손자를 대신해 죄를 갚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 한편의 '시'가 영화의 핵심이다.

이창동 감독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소녀가 자살한 사건과 같은 "그런 끔찍한 사건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며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일상에 대해, 그리고 도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시'란 아름답기도 하지만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는 "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며 "시에는 한가지보다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중적인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그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소개했다.

"이를테면 주인공 미자가 밭에 있는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할 말을 잊기도 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낀 시심 때문에 자기의 현실을 망각하기도 했습니다. 시에는 그 같은 성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에 다양한 '시'가 쓰이는 것과 관련, "내가 좋아하는 시도 있고 전문적인 시, 아마추어가 쓴 시 등 다양하다"며 "마지막에 주인공(미자)이 쓴 시는 내가 쓴 시"라고 설명했다.

2007년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그의 전작 '밀양'과 '시'를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굳이 구분하자면 '밀양'이 피해자를 다룬 이야기라면 '시'는 가해자 쪽의 고통을 다룬 이야기"라며 "가해자를 손자로 둔 할머니의 고통과 죄의식,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찾아야 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처럼 영화도 죽어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물론 "모든 영화가 죽어가지는 않지만 어떤 영화는 죽어간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좋아했고 만들고 싶었고 보고 싶었던 영화들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거쳤던 교사, 소설가, 영화감독, 문화부장관 중 어떤 일을 가장 선호하느냐는 질문에는 "한 번도 좋아서 직업을 선택해 본적이 없다. 심지어 영화감독조차도 그러하다"며 "영화를 만드는 일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회의가 생기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영화감독이 스트레스도 많지만 재미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작년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데 이어 올해는 경쟁부문 진출자로서 칸 영화제를 찾았다. 심사위원과 경쟁부문 진출 감독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둘 다 그렇게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으로서 남의 영화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는 건 부담스런 일입니다. 영화를 즐기고 싶지만 종종 즐길 수 없게 되는 상황 때문입니다. 제 영화를 가지고 와서 관객과 만나는 일은 좋은 일이죠. 하지만 경쟁이기 때문에 결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영화제를) 즐기기만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작년보다는 올해가 좋은 것 같습니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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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