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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지원 당선작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윤성(김흥수)은 착한 놈이다. 하지만 생활의 빈곤함이 온통 그를 둘러싸 있고 이 수렁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악한 것에 손을 대는 일뿐이다. 윤성에게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꿈이 연예인인 여동생 해경(조안)이 있다. 두명의 친구인 종길(오태경)과 영조(서장원)도 있지만 친구라고 말하기에 서로 믿는 구석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종길은 싸구려 에로비디오에 출연하는 배우지만 실은 폭력을 써서 먹고사는 양아치이기도 하고 영조는 유명 매니저인 양 행세하고 다니지만 기껏해야 사기꾼이다. 이들 사이에 에로비디오를 찍으며 장물아비도 겸하는 이상한 영화감독도 등장한다. 윤성은 이들과 함께 은행에서 돈을 강탈하고 그 돈으로 새 출발을 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세상이 내다버린 쓰레기처럼 살다가 파멸해버리는 어떤 젊은이의 사투에 관한 이야기이며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지원 당선작이다.

연출 동기에 관하여 감독은 1997년 당시 IMF 때 겪은 개인적 삶이 단초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그 의중을 단박에 알아차리기란 사실 좀 어렵다. 완성을 거치며 그런 의도는 많이 희미해진 것 같다. 한국사회와 청춘과의 함수관계를 풀어내는 청춘비망록이란 언젠가 한국영화 안에서 한 단계 발전한 적이 있다. <마이 제너레이션>과 같은 영화는 곡해된 청춘의 상을 과장없이 제대로 위치시켰다. 거기에 비해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주인공과 사회의 관계라는 점에서 감독의 말과는 다르게 좀 희미하거나 처음 시작했던 부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한 감상 포인트는 바뀌는 게 좋겠다. 권영철의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영화의 내용으로는 서로 관계가 없지만,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 영화 제목이 어딘가 구호 같은 느낌이 있어 가져왔다고 한다. 그 느낌이 이해가 된다. ‘나쁜 놈’ 과 ‘더 잘 잔다’. 그러니까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나쁜 놈의 단잠’이라는 이 컨셉은 악당들이 활개치는 지금 영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어떤 생동감을 대변하려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주인공의 파멸이 계속되며 장르적 쾌감까지 가속이 붙는다면 우린 나쁜 놈이 더 잘 자는 세상에 대해 장르적으로 만끽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의 잣대가 아니라, 장르적으로 즐길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판단이 뒤따르는 영화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확실히 장르적으로 접근한다. 감독은 “원래 장르영화에 대한 지독한 애착을 갖고 있다. 뭔가에 갈급해져서 자충수를 두는 우매한 사람들로부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예 정신줄을 놓고 사는 쉬운 사람들. 하지만 그 마음속엔 악마들이 우글거려 서로에게 파멸의 화학반응을 빚어내는 그런 유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도 마찬가지로 저열한 사람들이 모여 흥청망청 과잉감정을 던지고 받는 이야기다”라고 프로덕션 노트에 썼다. 몇몇 인물들은 발길로 한대 차고 싶을 만큼 악랄한 힘이 있다. 그걸 해내는 배우들의 역량(특히 오태경과 서장원)도 뛰어나 보인다. 혹은 불현듯 기대치 않았던 쪽으로 장면이 전개되는 때가 있는데 때론 불충분한 촬영분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애초 추구했을 맹렬한 과속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히 장점으로 보인다. 이렇게 몇 가지 확실한 인장을 찍어냈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실패한 것도 많아 보인다는 게 흠인데, 상투적인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한 장면을 말해도 된다. 주인공 윤성이 뒤집힌 차 안에서 나와 피를 흘리며 눈을 비빌 때 그 피흘림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때 그의 자세, 손바닥으로 눈을 비빌 때의 그 동작,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나 그런 건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몸을 움직이는 범죄영화 주인공의 어떤 도상화된 제스처가 너무 많이 보아온 어떤 반복이라는 인상을 주는 게 문제다. 굳건한 장르적 도상을 어떻게 다시 새롭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심이 장르영화의 영원한 관건이다. 감독이 존경해 마지않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가장 창의적인 장면 중 하나는, 무참하게 귀를 베어내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짓을 하기 전 발광하듯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던 그 몇분간의 난생처음 보는 위악적 몸짓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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