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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늙은 사자의 이빨은 아직도 날카롭군

파리 페스티벌에 140번째 작품 <캐터필러> 들고 온 와카마쓰 고지

<캐터필러>

전직 야쿠자. 사람들은 그의 초기작이 마피아의 피묻은 돈으로 만든 거라고 말한다. 1960년대 이후 그는 계속 위험한 장편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중 다수가 핑크영화로, <태아가 밀렵될 때>나 <천사의 황홀> 같은 작품들은 거의 숭배의 대상이다. 특히 그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와카마쓰 고지. 그가 올해 파리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나는 센 강변에 자리한 어느 멋진 호텔의 레스토랑에 그와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140번째 작품 <캐터필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이 영화는 2차대전에 참전한 뒤 일본 천황의 훈장을 받고 귀향하는 어느 군인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전쟁터에서 사지를 모두 잃고 벙어리가 된데다 얼굴까지 괴물이 되어 귀향하는데, 수발을 들어야 하는 그의 아내는 남편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한다. 와카마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에 여전히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인자한 웃음과 은빛 고운 머리칼을 유심히 바라본다. 하나 조심하길. 이 늙은 사자의 이빨은 아직 날카로우니까.

“이 작품은 2차대전에 대한 나의 기억과 관련이 있지요. 그때 난 먹을 것이 없었고, 황제의 사진 앞에서 매일매일 허리를 굽혀야 했습니다. 그 뒤 나는 일본이 주변국가들을 식민지화하고 그 나라 여자들을 강간하러 전쟁에 나섰다는 걸 알게 됐지요. 우린 황제가 신이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몸이 망가진 군인 역시 그런 세뇌교육을 받은 겁니다. 베트남 전쟁 영화에 나오는 미국 영웅들과 달리 그 군인이 반항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와카마쓰에게 그의 영화에 흘러넘치는 폭력성을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덥수룩한 머리털을 흔들며 웃음지었다. “외국인은 흔히 우리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사람들로 보지요. 사실 일본인은 자국 내 국민의 일부를 차별하고, 타인의 고통이나 빈곤을 보고 분노하지 않으며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역사, 일본의 모든 정부들이 했던 행동을 보세요. 일본이라는 나라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나라입니다.”

60년대에 와카마쓰는 자기 작품들이 마치 화염병인 양 들고 흔들어댔었다. 위험인물로 평판이 나 있었던 와카마쓰. 오늘날 그는 존경받는 영화인이고, 그를 기념하는 각종 영화제가 열리는 중이다. 하지만 그는 혼자다. “맞아요.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건 아니에요.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이상 없거든요. 오랫동안 영화인협회 멤버였는데 지금은 탈퇴했습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너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오시마 나기사와는 늘 가깝게 지내요. 불행히도 오시마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 만한 체력이 안됩니다. 그 사람은 투쟁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우리의 전투를 이끌어나갈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나는 영화 보러 자주 가지는 않아요. 간혹 관심이 가는 영화가 있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갑니다. 그건 대개 저를 안심시켜주지요. 나도 계속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제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도 아직 제가 보는 작품들보다 제가 만든 작품들이 훨씬 더 낫습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난 접시 위로 몸을 기울여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와카마쓰를 물끄러미 본다. 순간 우리가 있는 곳은 파리가 아니라 어느 산속의 주점이다. 널찍한 모자를 쓰고 등에 칼을 찬 채 어둠 속에 말없이 홀로 앉아 있는 그를 상상해본다. 와카마쓰, 그 방랑의 사무라이. 일본영화의 마지막 낭인(浪人)을.

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