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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코미디<리시와 난폭한 황제>

히말라야의 설인은 엉덩이춤을 추고 방귀를 뀌다 개구리들을 부풀리고 고슴도치로 엉덩이를 긁은 죄로 사탄의 심판을 받는다. 그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 사탄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사탄은 새끼 오리가 그려진 키친타월, 운동선수들이 쓰는 풋크림을 함께 고민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데리고 오라며 거래를 받아들인다. 그 다음 장면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로 등장하는 리시의 얼굴 클로즈업은 보는 괴로움을 유발하며 역시나 그녀는 남편인 황제 프란츠를 향해 뛰어오다 넘어진다. 코미디언이며 제작자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미카엘 헤르빅이 목소리를 맡은 리시는 재채기할 때 영락없이 우렁찬 남자의 음색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자막 때문에 목소리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리시와 난폭한 황제>는 이렇듯 기발한 상상과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며 블랙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웃음의 핵심은 수많은 패러디에 있으며 풍자의 수위는 높다. 이 영화에 사용된 패러디는 라푼젤과 트로이의 목마 같은 동화와 신화에서부터 문학과 뮤지컬, 영화에 이르기까지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마릴린 먼로와 <물랑루즈>를 거쳐 <킹콩>에 이르면 패러디는 정점에 달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웃음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다소 조잡할 것 같은 패러디가 산만해지지 않고 탄력을 받는 것은 그것이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자본과 광고, 정치와 제도, 성문화, 상류사회와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풍자 등 온갖 다양한 풍자가 그 속에 숨어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폭력에 대한 풍자는 영화 전반을 아우르며 빛을 발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재미있는 블랙코미디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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