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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통신] 토마스 만은 동성연애자?
2001-12-24

공영방송 ARD, <만가의 사람들> 3부작 방영

요즘 독일은 ‘만’의 시대다. <마의 성> <부덴부르크 일가>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만과 2차대전 뒤 동독으로 넘어가 사회주의 문학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던 형 하인리히 만이 그 주인공. 지난해 봄 뤼벡의 ‘만’ 박물관이 재개관하면서 불기 시작한 ‘만’ 열풍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12월17일부터 제1공영방송 가 방영한 3부작 <만가의 사람들>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하인리히 브렐로어가 메가폰을 잡고 독불 공동문화채널 아르테가 제작했다. 독일 최고의 토마스 만 전문가로 불리는 페트라 쇼테의 자문을 받아 꼼꼼한 고증을 거치느라 제작기간만 2년을 넘긴 서사극 <만가의 사람들>은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TV영화 장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연출기법을 시도하고 있으나, 작품을 관통하는 맥은 토마스-하인리히 형제의 전기에 충실하고 있다. 대신 픽션적 요소를 가한 소소한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건조할 수도 있는 다큐적 성격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정도다.

또한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여비서가 위대한 작가를 평생 흠모했다거나, 만이 자신의 75살 생일파티가 열렸던 취리히호텔의 웨이터 프란츠 붸스터마이어에게 구애했다는 등, 새로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토마스 만의 동성연애적 성향에 대한 의혹을 뒷받침해준다. 브렐로어 감독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연출에 대해 두 요소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만 형제의 삶에 기초한 논픽션적 연출이 한계에 도달할 때, 픽션적 요소가 극진행에 기름칠을 해준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논픽션이며, 어디서부터 픽션이 시작되는 것인가?

만 형제가 사경을 헤매는 모친을 찾아가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 안에는 두 형제 부인들도 함께 앉아 있다. 브렐로어는 당시 동행하지 않았던 토마스의 부인 카티아를 함께 태움으로써, 토마스와 하인리히 형제간의 갈등, 그리고 두 여인들의 성격적 부조화를 영상으로 극명히 보여준다. 이런 트릭은 형 하인리히의 칠순잔치 시퀀스에서도 나타난다. 둘째 부인 넬리 크뢰거의 옷이 찢어지는 장면이 그것으로, 호스티스 출신의 넬리가 귀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만 가문에 들어가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픽션에 가해진 다큐적 요소 역시 금칠 역할을 한다. 토마스 만이 자신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감사연설을 하는 장면의 마지막 즈음, 생존해 있는 막내딸 엘리자베스의 목소리와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부친에 대한 그리움에 복받친 그녀의 눈물을 통해 토마스 만의 인간적 체취가 전달되는 순간이다.

토마스 만 전문가 쇼테는 브렐로어 감독의 픽션적 터치가 만 형제의 삶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장애가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적 인물화를 위해 첨삭된 그들의 일생이 픽션적 요소를 통해 관객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시도로 평하고 있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