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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또 다른 그를 만나다>
2010-10-13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12일 오전 토크쇼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 녹화가 한창인 서초동 아리랑TV 스튜디오.

검은색 치마와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MC 박칼린이 스튜디오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의 자격'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감독 '칼마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게스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토크쇼 진행자만 있을 뿐이다.

박칼린은 초대손님으로 나온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가 '남자의 자격'을 언급하며 자신을 칭찬하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할 것 같다'고 응수하며 방청객을 웃게 만들었다.

주중 5회 방송되는 토크쇼를 10개월째 진행해 온 만큼 여유가 묻어난다.

녹화가 끝나자 방청객 2명이 사진을 요청한다. 그는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는 "10개월 진행하지만 사진 요청은 처음"이라며 싱긋 웃는다.

아무래도 '남자의 자격'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미친 듯하다.

"게스트분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해 주시긴 해요. 전에는 '애는 뭔데 여기 있나' 라고 생각하시는 듯한 분들이 있었다면 지금 그런 분들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TV 잘 안보시는 정치나 경제계 인사들은 여전히 저를 잘 모르세요."

박칼린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하나로 이끌며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그가 말한 'I 믿 you'는 신뢰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말이 됐고 박칼린은 롤모델로 떠올랐다.

방송 후 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고 싶어했고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그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록뮤지컬 '틱틱붐'에 음악 총감독으로 참여한 그는 요즘 목원대학교에서 주 2회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 3회 아리랑TV에서 '하트 투 하트' 녹화를 한다.

그가 하는 일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그를 보는 세상이 변했을 뿐이다.

"음악감독을 할 때와 진행자로서 저는 전혀 달라요. 완전히 분리되죠. 토크쇼 메이크업해주시는 분이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저에 대해 떠드는 말을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감독으로 지시 내릴 때와 달리 여기선 제가 제작진의 지시를 받고 남의 얘기를 듣잖아요. 지시받는 위치가 되면 저는 굉장히 순종적이에요. 지시하는 대로 그냥 다 따라요."

'남자의 자격'으로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이 많지만 이래뵈도 그의 방송경력은 10년이 넘는다.

1997년부터 아리랑TV의 국악 프로그램을 4년간 진행했고 문화기행 프로도 맡았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초대하는 토크쇼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가 원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요. 원래 궁금증이 많아서 이런 토크쇼를 하면 배우는 게 많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프로를 진행하면서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는 뭔가를 파고드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왜, 왜 하고 자꾸 파고들죠. 이 쇼에 나오는 사람들은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뒷얘기들이 있어요. 그런 걸 듣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방송시간 30분이 너무 짧아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인 만큼 영어로 진행하지만 일주일에 2번은 국내 게스트를 불러 한국어로 진행한다.

'남자의 자격'에서 거침없는 화술을 자랑했던 그였지만 "한국말로 토크쇼 진행은 서툴다"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한국말로 못 뱉어낼 때는 혀를 어떻게 하고 싶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100명이 넘는 게스트를 만나는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다.

"제가 눈물이 많아요. 어려움을 극복한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나요. 진행자로 객관성을 가져야 하지만 냉정하지 않은 모습이 인간미가 있어 보인다는 소리도 들어요."

미국 유학생이던 아버지와 리투아니아 출신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보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그는 세상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집에서 하숙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던 점도 도움이 됐다.

특히 미국 중학교 재학시절 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 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저희 집이 이사를 가면서 학교를 옮겨야 했는데 그분이 제가 너무 아깝다며 저를 집에서 살게 해 주셨죠. 미국에선 굉장히 드문 일이었어요. 그분 집에 가보니 우리 집과는 너무 다른 거에요. 굉장히 미국적인 가정이었어요. 그 속에서 다양함 속의 균형을 배웠어요."

영어 선생님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머니는 사람은 항상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대화를 하면서 지혜를 기를 수 있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젠간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어요. 제가 말을 진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착각이었죠.(웃음) 근데 이렇게 진짜 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는 미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1년을 보냈다. 많은 것이 달랐다. 그는 꽉 짜여진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연극을 하고 영작신문을 만드는 등 특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재미를 찾았다.

"당시 선생님이 절 싫어했어요. 저 때문에 반 평균이 내려갔으니까요. 뭐 전 그걸 잘 몰랐으니까 상관없었어요.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1년을 보냈어요. 그때도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갖고 있었어요."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음악을 돈버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한다"고 했다.

"공연 쪽에 있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토크쇼를 하면 '맞아, 나 별거 아냐. 당신도 별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대단한 인간은 없어요. 누구 한 명으로 인해 지구가 휘청거리진 않더라고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거죠."

팍팍한 스케줄에 몸이 피곤하긴 하지만 정신 만은 살아있다고 그는 힘줘 말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뭐냐고 묻자 "원래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 이제껏 일을 하고 산 적이 없어요.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그걸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일이 힘들고 안 힘들고는 생각의 차이에요. 종이 한 장 차이죠."

토크쇼 외에 그는 '아이다' 음악감독에 이어 내년말 뮤지컬 '렌트'를 연출할 예정이다. 뮤지컬 활동을 하면서 학교수업과 토크쇼 진행도 병행한다.

약속된 일정이 줄을 잇지만 그가 정작 계획한 것은 하나다.

"아주 즐겁게 사는 것. 계획은 그것밖에 없어요. 즐거운 일을 하고 놀기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추고 싶어요."

okk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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