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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광고] 가짜 유명인 등장시킨 광고 두 편
2001-12-27

짜고 치는 고스톱이 더 재밌다?

제작연도 2001 광고주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제품명 스카이라이프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KU프로덕션(감독 박대민)

제작연도 2001 광고주 삼성전자 제품명 센스큐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쥬프로덕션(감독 서정완)

광고계에 ‘가짜’ 유명인이 판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 스타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모차르트 등 물 건너온 이국의 스타가 국내 CF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 ‘별’ 가운데 고인(故人)도 있으니 광고의 실제 출연자는 진짜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무늬만 스타인 흉내내기 모델(이미테이션 모델, 혹은 임프레셔니스트(impressionist))다.

사례 하나. 퇴임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하루를 그린 스카이라이프 광고다. 보디가드들을 거느린 채 근사한 저택에 들어선 클린턴. 집에 오니 막상 할 일이 없자 하품을 터뜨리는 그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텔레비전을 켠다. 그런데 TV 리모콘을 든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클린턴이 위성방송을 선택하자 열심히 청소하던 가정부가 갑자기 프로골퍼로 변신하는 놀라운 광경을 만난다. 눈을 꿈쩍거리며 정신을 차리는 그가 또다른 위성방송으로 채널을 돌려본다. 이번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아가씨가 등장해 서핑보드 같은 스포츠레저용 상품을 광고하고 있다.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검색창이 화면에 나란히 떠 있음에도 그는 온통 미녀의 수영복 몸매를 감상하는 데만 정신을 팔려있다. 이때 뒤에서 한눈파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전 퍼스트레이디 힐러리가 날 선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러자 힐러리의 심기를 이해한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가 화면에서 튀어나와 클린턴을 향해 돌진한다. 실감나는 영상 퍼레이드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소파 뒤로 고꾸라지는 클린턴. 멋쩍은 얼굴로 ‘와, 대단한 접시야’라고 한마디를 던진다. 접시는 위성방송 안테나를 지칭하는 말. 즉 이 광고는 디지털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전직 대통령의 하루를 특별하게 바꿀 만큼 기존 방송보다 한 차원 높게 흥미진진한 영상세계를 선보이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례 둘. 삼성전자의 노트북 브랜드 센스큐(Q) 광고. 숀 코너리, 마이클 잭슨 등 이름난 해외스타를 시리즈로 내세워온 이 CF는 스타와의 만남 같은 현실에서 쉽게 가능하지 않은 특별한 이벤트를 노트북 센스큐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해 맛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광고에선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이 ‘V자’ 모양의 손으로 눈가리고 트위스트 춤을 추는 영화 <펄프 픽션>의 한 장면으로 전속모델 김정화가 틈입하는 상황이 나온다. 김정화에게 파트너를 빼앗긴 가짜 우마 서먼이 김정화를 밀어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의 말투 등을 모사하는 ‘캐리커처’ 스타일의 코미디가 일상의 유머로도 일반화한 현재, 유명인을 닮은 그들의 광고계 습격은 아주 새로운 사건은 아닐지 모른다. 이미테이션 모델이 진짜를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이들 광고는 유명인의 지명도와 특별함에 기대 극적인 재미를 추가하고 메시지의 파워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광고는 익숙한 히트작의 한 장면을 차용해 코믹하게 제품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러디 CF보다 한술 더 뜬 노골적인 희화화의 재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짜를 통해 진짜에 근접하겠다는 립싱크 같은 효과나 참과 거짓의 혼란을 유도하는 ‘감쪽같은 속임수’가 아니라 명백히 가짜임을 드러내며 원전에 대한 익살스러운 변주를 함께 즐기자고 제안하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귄위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을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웃기는 중년남성으로 표현한 스카이라이프 CF는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이라고 특출나게 근엄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게를 벗어던진 채 호들갑을 떠는 클린턴의 모습은 거칠 것 없는 유머의 지평을 보여주며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진짜 클린턴이 재임 시절 성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짜 클린턴이 미녀에게 넋을 빼는 모습은 그럴듯한 설정이었다.

가짜 유명인을 앞세운 광고는 정색하면서 진실되게 브랜드의 가치를 설파하고 자랑하는 직접적인 방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 광고도 어차피 허구와 연출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가짜의 ‘쇼’를 질펀하게 펼쳐놓으며 전달하고 싶은 얘기를 간적접으로 밀어넣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 CF의 전략은 등을 느슨하게 기댄 채 거리를 두고 가볍게 즐기기에 적합한 것인지 모르겠다. 판단의 몫을 시청자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주입식 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장점도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