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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이슈] 전쟁은 도처에 있다
김소희(시민) 2010-12-06

사주에 나무(木)가 많다는데 그래서인지 낙엽 지면 비실대는 편이지만, 이번주는 된통 앓고 있다. 감기도 아니고 영문을 모르겠다. 십수년 만이다. 고열은 달랬는데 기력이 없다. 몽롱한 상태로 TV를 켜면 무슨 게임하듯 화면 한가득 전투기들이 날고 여기저기 폭격이 이뤄진다. 무슨 뉴스에 저리도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등장하는지. 그래서 여차하면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 출격한 전폭기들이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 반복된다. 흡사 남 얘기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미국 대통령을 ‘모시고’, 미군의 ‘통제’를 받으며 산다 해도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아메리카는 아니잖니.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화면 한쪽에 연평도 주민돕기 자동전화 안내가 배너처럼 달려 있다. 하루아침에 피난민이 된 그들의 생계를 위해 국가가 해준 건 특별교부금 10억원 외에는 없다. 급히 연평도를 떠나온 주민이 1300여명이니, 일인당 100만원도 안된다.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예산 7천여억원이 그야말로 ‘황급히’ 증액 의결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들입다 강경책을 쏟아놓은 군 통수권자는 어쩔 줄 몰라한다는 후문이 그보다 더 크게 들린다. 벙커에 앉아서 전투기 폭격은 왜 안되느냐고 물으시다니. 여보세요. 당신에게 그럴 권한과 능력이 없잖아.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어떻게든 해보란 얘기야? 제발….

이런 국면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나이도 아닌데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도 아니잖아. 하지만 새파란 재벌가 집안 사장님에게 매타작당한 50대 노동자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 아프다 못해 헛소리까지 들리는가 싶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경찰이 범죄 용의자 수배를 하며 “노동자풍의…”라는 표현을 사용해 어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직접적인 분풀이 대상으로까지 취급당하는 건가. 뭐 이런 엿같은 상황이 다 있나. 주변에 회사 간부들도 있었다면서. (지입)차 사줄 테니 오라고 했다면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불러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대한민국에서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 극소수 있겠다. 하지만 노동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피해자는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일면부지인 나조차 온몸이 떨리다 못해 맥이 풀린다. 끔찍하고 잔인한 전쟁은 도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