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Entertainment > 연예 > 연예뉴스
<김은숙 "인생에는 마법 같은 순간 온다">
2011-01-16

(고양=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인생에는 마법 같은 순간이 옵니다. 그때 준비된 사람은 자기 인생을 마법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 이야기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 마법은 통했고 덕분에 시청자는 행복했다.

지난 석 달간 안방극장을 뒤흔들었던 SBS TV 주말극 '시크릿 가든'의 김은숙(39) 작가를 드라마 종영을 하루 앞둔 15일 경기 고양 일산에 있는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났다. 탈고 후 긴장이 풀려 피로에 짓눌린 그는 '시크릿 가든'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고 하자 "사실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실감을 잘 못하겠다"며 배시시 웃었다.

'파리의 연인'으로 대박을 친 후 '프라하의 연인' '연인' '온에어'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 그이지만 '시크릿 가든'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작인 '시티홀'의 흥행 부진을 딛고 다시 보란 듯이 홈런을 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 김은숙이 로맨틱 코미디에, 신데렐라 스토리에 독보적인 재능이 있음을 새삼 증명했다.

"'시티홀'이 잘 안되고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 싶었어요. 코믹함이 가미된 멜로 드라마죠.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변화를 주려고 했습니다."

'시크릿 가든'은 또한 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투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원이 연기한 길라임에게서 김 작가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비록 연인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재벌가 상속자와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역경의 시간을 딛고 마침내 인생의 마법을 경험한 화제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반응이 뜨겁다. '파리의 연인'을 능가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 반응을 볼 때 '파리의 연인' 때보다 더 뜨거운 느낌을 받긴 했다. 최근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던 고향(강릉) 친구들이 '언제 강릉에 오냐'고 묻는 걸 봐도 그렇다.(웃음) '파리의 연인' 때는 모교인 강일여고에 '선배님 자랑스럽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하하.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이 내내 화제이자 논란이 됐다.

▲신데렐라 스토리에 판타지를 가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많이 안 들어야했다. 처음에는 도깨비를 등장시킬까 했는데 CG가 많이 들더라. CG 말고 몸으로 때우는 판타지는 없을까 찾다보니 영혼이 바뀌는 것뿐이더라.(웃음) 김주원과 길라임의 영혼이 처음 바뀐 후 비난이 빗발치는 것을 보고 '내가 설정을 잘못했군' 하면서도 그만큼 시청자들이 주원의 캐릭터에 동화됐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토리를 수정한 것은 없다. 모든 이야기는 애초 계획대로 전개했다.

--해피엔딩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영혼이 바뀔 때부터 길라임 대신 김주원이 죽는다는 설에 무게감이 실렸다.

▲사실 지금껏 내가 해피엔딩을 안 한 적이 없다. 둘의 영혼이 처음 바뀔 때 깔린 복선 때문에 죽음에 대한 추측이 나온 것 같은데 그 복선도 후반에 길라임이 카 스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하는 것을 염두에 둔 내용이었다.

--김주원의 기억상실은 황당하기도 하고 허를 찔린 느낌도 들었다.

▲안 그래도 반대가 무척 많았다. 상투성 때문에 굉장히 욕을 먹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난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반대에도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기억상실'이라는 어감이 안 좋으면 '기억찾기'라고 하자고 주장했다. 김주원이 완벽하게 길라임을 기억해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마지막회 에필로그에 보면 김주원의 기억찾기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여주인공이 스턴트 우먼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지금껏 등장하지 않은 직업을 찾다 스턴트 우먼을 만났다. 결정하고 보니 하지원하고도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하지원은 영혼이 바뀌는 콘셉트의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출연을 결정한 상태였는데 그다음에 직업이 스턴트 우먼이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 하지원이 너무 잘해줬다. 진짜 열심히 했고 무술팀도 너무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덕분에 스턴트맨의 세계가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정두홍 무술감독님을 내가 직접 취재했다. 대개 자료 취재는 보조작가에게 맡긴다. 내가 취재를 하면 거기서 얻은 사실에 막혀서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감독님은 직접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취재에 나섰고 장시간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다. '하루라도 이 일을 그만둬야지 생각 안한 날이 없다' '아이가 생기니까 오래 살아야지 싶고 가장으로서 몸 다치는 것에 조심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김주원이 연기한 재벌의 모습도 색달랐다.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하다보니 그간 재벌을 많이 그렸다. 이번에도 재벌이지만 그간 내가 한 설정들을 피해가려고 했더니 김주원같은 캐릭터가 나왔다. 그간 재벌하면 비싼 차나 의상으로만 표현됐는데, 진짜 재벌이라면 책을 읽고 미술작품을 감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있는 자들의 허영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지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책 읽는 주인공이 나왔다. 우리 드라마에 등장한 책이 많이 팔렸다는데 어찌됐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것 아니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강조한 것은 그 책의 내용처럼 우리 드라마에 마법같은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김주원의 트레이닝복은 이효리가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였던 별무늬 트레이닝복이 촌스러운 것 같은데 사실은 무척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라는 사실을 듣고 내 주인공이 입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설정으로 넣었다.

--주인공 캐릭터가 이색적이어서인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시청자는 열광했다.

▲따지고보면 우리 드라마에는 모든 상투적인 설정이 다 들어있지만 난 그런 것들을 갖고 이렇게 다르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주인공의 힘도 컸다. 대개 첫 대본 연습 때는 배우들이 설렁설렁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의 첫 연습 때 하지원, 현빈은 정말 진지하게 실제 촬영하는 것처럼 했다. 반나절 동안 했는데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 실감이 났고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팍 왔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너무 잘 어울렸다.

--길라임을 향한 문분홍 여사의 독설도 화제였다.

▲(농담조로) 남한테 상처주는 대사를 쓰는 게 제일 쉽고 너무 신이 난다.(웃음) 오히려 착한 인물을 그리는 게 어렵다. 우리 주인공들이 착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무척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독한 대사를 쓸 때는 마치 신내린 것처럼 술술 써진다.

(가난한 길라임에게는 김은숙 작가의 실제 과거가 오버랩된다. 드라마에 관한 대화를 한참 나눈 후 그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하기 싫은데…. 지나간 일 얘기해서 뭐하나. 로맨틱 코미디 쓰는 작가가 어려웠던 시절 얘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라며 주저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냐'고 재차 부탁했더니 그는 지나간 시간들을 최대한 담담하고도 빠르게 술회했다.)

--길라임이 사는 월세 30만원짜리 옥탑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3남매가 엄마와 어렵게 살았다. 우리 딸이 6살인데 주변에서 '어떤 동화책을 읽어주냐. 작가님은 어렸을 때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난 못 읽었다. 책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때부터 공상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가 싫어 동시를 써갔다. 가난한 일상에 일기에 쓸 말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때 선생님이 화내지 않고 내 동시를 칭찬해주셨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았고 그때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 내게는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이 책밖에 없었다.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을 비롯해 오정희, 신경숙 작가의 책을 섭렵했다. 신경숙 작가가 서울예대 문창과를 나온 것을 알게되면서 이 사람처럼 되려면 그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1997년 스물다섯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했다. 그때까지 번 돈을 모두 엄마께 드리고 이제부터 내 길을 가겠다며 상경했다. 그때부터 졸업하던 1999년까지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 원없이 글을 쓰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졸업하고는 막막했다. 신춘문예는 낙방하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로에서 희곡을 썼는데 꿈은 큰데 현실이 너무 힘드니까 정신적으로 괴로웠다. 수입이 변변하지 않으니 2003년까지 한성대 근처에서 월세 30만 원짜리 반지하방에서 도시빈민으로 살았다. 새우깡 한 봉지로 3일을 버틴 적도 있다. 낙향해야 하나 고민할 때 드라마를 써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때 내 첫마디가 '돈 많이 주냐'였다.

(그랬던 그는 현재 회당 2천만-3천만 원을 받는 1급 드라마 작가가 돼 있다. 서울예대 문창과는 2011년 신입생 모집 광고에 신경숙과 김은숙의 얼굴을 내보냈다. 연애도 드라마틱하게 했다. '파리의 연인'이 끝난 후 필리핀으로 여행갔다가 현지에서 바를 경영하던 지금의 남편에게 반한 그는 열렬한 연애 끝에 2006년 결혼했다. 그의 연애 경험 역시 김주원-길라임의 연애 스토리에 부분적으로 녹아있다.)

"내가 꼬셔서 남편과 결혼했다"는 김 작가는 "김주원이 '네 꿈속은 왜 그리 험한 건데'라며 꿈꾸는 길라임의 미간을 눌러주는 내용 등은 우리 부부 이야기"라며 웃었다.

이렇듯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거둔 김 작가이지만 그는 '인기 드라마'가 아닌 '좋은 드라마'에 대한 고민을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눈물을 살짝 보이기도 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 인기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일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가 '시크릿 가든'이야말로 진정한 막장 드라마'라고 하던데 참 속상하죠. 그런데 제 나름 좋은 드라마라는 자부심을 갖고 쓴 '시티홀'의 경우는 시청률이 잘 안나왔어요. 심지어 '작가주의 하겠다는 거구나'라는 공격도 받았어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하면 그게 좋은 드라마일까요?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이 될 것 같아요."

pretty@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