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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근 "배우들에게 무표정 연기 주문했죠">
2011-02-06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배우들에게 무표정으로 연기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영화 '혜화, 동'으로 장편 데뷔한 민용근(35) 감독이 최근 기자와 만나 들려준 말이다.

'혜화, 동'은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입양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대 초반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헤어진 지 5년 만에 전 남자친구 한수(유연석)가 혜화(유다인) 앞에 나타나 아이가 살아있다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종로구 혜화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여주인공 혜화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의 동(動), 혜화와 아이라는 의미의 동(童),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겨울을 의미하는 동(冬) 등 영화의 제목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민 감독은 "다양한 의미를 주고자 한자를 제목에서 뺐다"고 했다.

혜화와 한수는 슬픈 표정을 짓지 않지만, 영화의 내용은 절절하다. 카메라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격랑을 우직하게 지켜본다. 인물들의 표정보다는 그들이 겪는 안타까운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민 감독은 배우들에게 무표정 연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표정보다는 인물의 행동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인물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영화에서 배우들은 많은 표정을 지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을 별로 짓지 않죠. 상황에 따라서 무표정이 기쁘거나 슬프게 느껴질 뿐입니다. 상황이 슬프면 무표정에서도 큰 슬픔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배우들에게는 속으로는 슬픈 감정을 가지되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민 감독은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야기의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는 물끄러미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진행이 빠르지 않아 다소 답답하다. 상영시간은 107분인데, 심리적인 상영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보죠. 지하철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특정한 행동을 해요.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기 시작하죠. 그러다 보면 헤어질 때 그 사람에 대해 무언가 알게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외적인 동작만 보고 유추할 때, 일종의 미스터리 같은 게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미스터리한 느낌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어떤 사람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사실이 나오는데, 결국 그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시나리오의 전개방식도 그런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진행했습니다."

'혜화, 동'은 2004년 민 감독이 KBS 다큐멘터리 '현장르포 제3지대'의 조연출로 참가하면서 취재했던 한 여자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유기견 구조를 위해 사흘 밤낮을 길바닥에서 보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한 여인의 눈물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여인은 탈장한 개를 구해주려는데 왜 그 개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느냐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도대체 그런 정서의 정체는 무얼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와 닿지 않았던 혈육의 애잔함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됐어요. 유기견 이야기와 혈육이 주는 인연 등을 기초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한겨울이다. 폐가들이 늘어선 산동네 골목길이 보이고 굶주린 개들이 짖어댄다. 황량하다. 민 감독은 거칠고 쓸쓸한 겨울 풍경을 담기 위해 고양시의 한 철거 촌에서 영화를 찍었다. 소품 없이 널브러져 있는 건물 잔해들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버려진 동네나 집을 보면 슬픈 느낌이 든다"며 "그런 느낌들이 영화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단편 '도둑소년'(2006)으로 삿포로 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이유림ㆍ장훈 감독 등과는 옴니버스 영화 '원 나잇 스탠드'(2010)를 찍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민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잔잔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앞으로는 인물이 강하거나 사건이 박진감 넘치게 흘러가는 선 굵은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제가 만든 영화들은 인물이 강하거나 이야기가 강한 영화는 아녜요. 오히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영화의 정서가 조금씩 스며드는 인물들을 그린 경우가 많죠. 그런 작업방식이 좋았는데, 다음에는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인물이나 이야기의 힘, 편집의 힘 등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로 탄탄한 영화들을 만들고 싶어요. 이를테면 자크 오디아드 감독은 잘 들리지 않는 사운드와 이미지를 이용해서 훌륭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요. 저도 그런 영화들을 만들고 싶네요."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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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