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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파격결말..'정의는 죽음으로 구현되나'>
2011-03-11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유력 대통령 후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비뚤어진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의 딸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정치검사·변호사는 그에 빌붙어 기생하고, 오직 사실만을 밝혀야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는 부검 결과 조작을 밥 먹듯이 한다. 돈과 권력 앞에 증거 인멸·조작은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의는 구현됐다. 심연에 가라앉은 줄로만 알았던 정의는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날 극적으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대통령 후보를 낙마시키고 그 딸의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랐다. 심지어 마지막 희생에는 자발적 '순교'도 따랐다. 오직 죽음으로서만이 거대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라서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왜 마음 한구석은 찜찜한 것일까.

SBS TV 수목극 '싸인'이 10일 파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천재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 분)이 각종 범죄와 권력형 비리에 맞서 희생자들의 몸에 남겨진 '싸인(SIGN)'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는 마지막회에서 주인공의 순교라는 비극적 선택을 했다.

윤지훈은 드라마의 첫회에서부터 끝까지 극을 관통한 아이돌 스타 서윤형의 죽음이 타살임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돼 범인 강서연(황선희 분)을 유인했고, 더이상 어떤 조작도 할 수 없도록 강서연이 청산가리를 탄 차를 알고도 마셨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몰래 숨겨둔 CCTV로 촬영해 자신의 몸에 새겨질 죽음의 싸인(비구폐쇄성질식사)과 함께 증거자료로 남겼다.

비록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의로운 죽음' 덕분에 정의는 구현됐지만, 시청자는 통쾌한 카타르시스 대신 진한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사극도, 시대극도 아닌 현대극에서 여전히 정의는 죽음과 맞바꿔야만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이 묘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쾌감과 닮아있다.

이는 보편적 재미를 추구하는 지상파 TV 드라마에서는 분명 보기 힘든 결말이다. 더구나 '싸인'처럼 범인 검거를 위해 긴박하게 달려온 수사극에서는 대개 시원한 해피엔딩을 통해 후련함을 안겨주기 마련인데 '싸인'은 기존 드라마의 공식을 보기좋게 배반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결국 실제 사건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드라마에 적절히 녹이겠다는 작가(장항준.김은희)의 계획은 마지막에는 윤지훈의 순교를 통해 우리 사회 밑바닥에 여전히 깔려있는 권력에 대한 트라우마도 건드렸다.

엄혹한 시절을 통과하며 이제는 새 세상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작가는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윤지훈이 죽음을 통해 남긴 간절한 싸인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외면해서는 안되는 싸인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작가는 윤지훈의 죽음을 마지막이 아닌 첫 장면에 바로 배치하면서 이러한 자신의 질문이 가식이 아님을 보여줬다. 감정을 극대화해 마지막에 순교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송 시작과 함께 곧바로 죽임으로써 시청자를 뜨악하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한 배신감은 오히려 죽음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효과를 냈다.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겁을 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편리하죠" "나한테 명령하지 마세요. 명령은 내가 내려요" "(왜 죽였냐고요?)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배신했거든요" 등 '주옥같은 망언'을 쏟아냈던 강서연은 검찰에 잡혀가는 순간까지 "난 태어나면서부터 당신들과 틀린 사람이야. 난 무죄로 풀려날 거야"라고 자신했다.

과연 윤지훈과 강서연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일까.

'싸인'이 남긴 흔적이 아리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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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